정년퇴임한 장인선 교무
정산종사로부터 법명

일생을 공익을 위해 이타심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기에 전무출신의 삶은 헌신과 존경이 공존한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없는 삶이기에 전무출신의 퇴임식을 바라보는 이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그런 의미에서 13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진행된 '원기98년 퇴임봉고식'은 후진들에게 출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군산교당 학생회 부회장 출신인 장인선 원로교무는 "'소리없이 평상심으로 살아라. 근실하고 정성스럽게 살아라'라는 정산종사의 법문을 마음에 새기고 교화현장을 누볐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인선(仁善)'이라는 법명을 내려준 이는 정산종사였다. 막연했던 출가에 대한 고민을 정산종사를 뵙고 굳힌 것이다.

그는 "당시 조실에서 정산종사께 인사를 올렸더니 큰 홍시를 하나 주셨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정산종사께서 홍시를 하나 더 내주셨다"며 "그리고'일 잘하게 생겼다'하시고 법명을 주셨다. 그때의 홍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출가 이후 그는 동래·정읍·부곡·경산·삼성·남서울·신마산·김천교당 그리고 호주원광한의원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3번의 교당 봉불식을 거행하는 등 교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사실 큰 교화는 못했지만 가는 곳마다 전무출신을 추천했고, 후임자에게 짐이 안되려고 열심히 살았다"며 "어려웠던 교당은 어느 정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등 교화여건을 개선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힘들었던 교당으로 부곡과 경산교당, 그리고 남서울교당을 꼽았다. 교화에 전력하다가 큰 병을 얻어 수술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교화하는 재미로 즐겁게 살았다.

그는 "큰 복은 간사시절부터 부교무, 교무 때 은타원 서세인 원로교무를 모시고 산 것"이라며 "힘든 시기였지만 나에게는 서원과 공심을 세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몸이 불편한 서 원로교무를 찾아 방청소를 하는 등 사제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퇴임 후 생활과 관련된 질문에 "내 자신이 철저히 수행해서 열반락을 나퉜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공부해 왔던 법문사경이나 붓글씨 등에도 소홀히 하지 않을 작정이다"고 밝혔다. 동산원로수도원을 내 집 삼아 정원을 손질하는 등 이사병행의 공부법으로 정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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