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 생사를 넘어서도 할 수 있는 것'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은혜의책보내기운동본부 사무실에 출근하는 규산 권도원(69·規山 權道圓)원로교무. 그의 사무실은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 1층이다. 숭산 박광전 종사의 유품 전시실을 지나 숨박꼭질하기에 참 좋은 위치이다. 1층에 있다고 알려줘도 마중 나오지 않으면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기운이 없다가도 출근하려고 자전거만 타면 신이나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솟구친다"고 목청 높여 말했다. 지병이 있어 병원치료를 하지만 아직 건장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요즘 그는 4월26일 오전11시 강원도 인제 12사단 37연대 을지사단 향로봉부대에서 진행될 행사를 매일 점검한다.

올해는 원불교 군종 승인 7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은혜의책보내기운동본부는 도서 100만권 돌파 기념식을 진행한다.

그는 "마침 좌산상사께서 동행해 행사를 빛내주기로 하셨다. 얼마나 마음이 가쁜 한 지 모른다"며 "꿈만 같은 나날이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교화 3대 사업 진행

대봉도인 그는 "출가해서 평생 교화 3대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소개했다. 바로 '입교운동, 원미술인회 창립, 은혜의 책보내기운동'이다. 그는 입교 특상을 수차례 받은 바 있다. 또 교단의 문화적 지평을 열어가는 원미술인회 창립으로 일원문화 창달에 기여했다.

그는 "출가 초기 해룡고등학교에 근무했었다. 당시 학생들이 원광대를 많이 갔다"며 "원광대로 발령을 받고 그 학생들을 토대로 원미술인회를 창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미(圓美)〉 1집을 가리키며 "창립멤버 출석부나 다름없다"고 소중함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원기86년부터 군부대에 '은혜의 책보내기운동'을 전개했다. 인연 닿는 곳마다 도서를 보급해 군에 원불교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데 한 몫 크게 한 셈이다.

국민 독서문화 창달로 국가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10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그는 "당시 군 부대를 찾아 가려면 떡을 해 가는 풍토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보내면서 부터 사단장들도 '떡 보다는 책'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2001년 은혜의 책보내기운동이 활발할 당시 미국에 9·11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국가에서는 군부대에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때였다.

그는 "군부대에 책보내기운동을 전개하던 때라 미묘하게 원불교 홍보도 많이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러 정황으로 국방부에서는 '원불교'의 군종참여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원기91년'원불교가 군종장교 병적편입대상 종교로 선정'되는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요즘 나의 서원은

다음 생에도 멋진 일원문화 창달을 위해

매 순간 사은전에 기도 올릴 뿐


일모도원(日暮途遠), 매 순간 기도

그는 "장사꾼은 천원을 보고 천리를 간다고들 한다. 교화자는 한 사람을 교화하기 위해 만리를 간다. 내가 입교 연원인 사람들이 교당마다 주인이 되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감사의 보람이 참으로 크다. 그 보람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교화하고자 온 몸으로 부딪치다가 손에 잡힌 일들이 원미술인회 창립까지 하게 된 것이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 권의 책으로 60만 국군장병들과 인연이 되어 군교화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다"며 "교화자에게는 퇴임도 정년도 없다. 아니 생사가 없다. 살아서 교화한 사람은 죽어서도 교화를 하기 마련이다"며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고 '몸은 늙고 쇠약한데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을 설명했다. 군종승인 7주년 100만권 돌파 기념식 등 할 일들이 눈에 선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육신은 지금 많이 아프다. 한 달에 두 번은 병원에 가서 항암주사를 맞는다. 그러나 스스로 그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무(慰撫)하기에 잘 견뎌 내고 있다. 아픈 몸이 언제까지 버텨 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는 "요즘 나의 서원은 다음 생에도 멋진 일원문화 창달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매 순간 사은님전에 기도를 올릴 뿐이다"고 속내를 꺼냈다. '이 서원이 최후일념이 될 것이다'는 말이다.

그는 "내가 죽을 날짜만 모를 뿐, 그날은 반드시 온다. 날 잡으면 순식간이 될 것이다"고 담담하게 생의 최후를 그렸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은장이 되라

그는 군장병들에게 전해줄 강연을 정리 중이기도 하다. 주제는 '그대들은 은장(恩將)이 되라'이다. 군대 내 구타, 탈영, 자살 등 갖가지 사고 예방 차원에서 그가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만을 담은 내용이다.

구구절절 삶의 의미를 전하고 있는 강연의 내용은 '평소 사용하던 군용장비가 노후 되어 사용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하는가. 반품을 하고 새것으로 받아온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빛나게 잘 쓰라고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하면 새 몸을 받지 못한다. 마치 군장비를 새로 바꾸고 싶으나 기존 것이 없으면 바꿔주지 않는 원리와 같다. 잊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귀한 몸을 버리면 찾을 수 없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벗어나려 말고 올 것이 왔구나하고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 정도는 감사하다하고 손님처럼 대하면 쉽다. 정신차리고 차를 운전할 때 목적지까지 사고없이 갈 수 있다. 마음운전 역시도 그렇다. 늘 마음운전 잘 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젊은 장병들이 살아야 할 까닭을 강연에 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역경(逆境)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지나가는 바람은 춥지 않다. 그 순간만 참으면 지나가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한 순간 '욱'하는 마음으로 일을 내지 말고 한 순간만 참으면 되는 것이다"며 "결국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고통을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 고통을 끌어안는다면 고통이 쉬이 가라앉는다"는 경험을 털어 놓았다. 그 어떤 경계나 고통도 끌어 안을 때 성공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행복한 삶의 요소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이 최고의 행운이다. 고로 나는 최고로 행복하게 살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통장을 만들면 좋겠다. 그 안에 배려의 마음을 담아 진리에 보험을 들면 영생을 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은장(恩將)'은 행복통장을 만드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순간도 육신의 아픔, 고통 등의 변화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소로 승화시키는 그가 진정 이 시대 최고의 '은장'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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