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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의 달에 느끼는 인정미
대각의 달에 느끼는 인정미
  • 남궁명 기자
  • 승인 2013.04.05
  • 호수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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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봉사 하고 싶다"
어려운 이웃이 늘고있다. 이는 세상이 각박해 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경산종법사는 신년법문에서 '인정미'를 강조했다. 이웃간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봐주며 온정을 건네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이웃과 함께 희망을 나누는 현장이나 인물을 만났다.
1주 자선원·동그라미플러스, 2주 용인 은혜학교, 3주 군산 은혜의쉼터, 4주 원봉공회 빨간밥차 나눔현장이 게재된다.
▲ 한상기 씨가 생활인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이·미용 봉사 30년
자선원, 한상기 자원봉사자


자원봉사는 개인의 행복감과 함께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2011년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관실 자료에 따르면 등록자원봉사자는 49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 수준이다. 지역사회속의 10명 중 1명은 자원봉사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영역도 재능기부, 노력봉사 등 전문성 있게 나눠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관심이 있기 전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꾸준한 자원 봉사로 주변에 훈훈함을 주는 인물이 있다.
노숙인재활시설인 자선원에서 오랫동안 이·미용봉사를 해 온 한상기(62)씨다.

기관 한켠에 마련된 이·미용실에 들어서니 '왜 왔느냐'며 핀잔을 준다. 본인은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기관을 통해 이미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는 설명이다.

사과를 하며 은근히 질문하자 그제야 운을 떼었다.

그는 "생활인들의 지저분한 머리를 깨끗이 정리해주고 개운한 마음이 좋아 시작한 일이 벌써 30년이 된 것 같다"며 "요즘은 나이가 있어 몸도 마음도 귀찮지만 다녀가야 한 가지 일을 끝낸 것 같아 개운하다"고 말했다.

무덤덤하고 무뚝뚝한 말투지만 왠지 모를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현재 익산시 부송동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이·미용봉사를 시작한 것은 같은 동네 형의 자원봉사 활동을 보고 난 이후다.

그는 "1988년 여름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동네 사는 형이 하루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내 가게에 왔다. '어디서 땀을 그리 흘리고 오느냐'하고 물으니 '시설에 이·미용 자원봉사를 다녀 왔다'고 이야기 했다"며 "'그러면서도 재밌느냐'는 질문을 던진 후 나도 한번 가보자고 했던 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정기휴일인 매주 목요일에 자원봉사를 다녔다. 처음에는 자선원 뿐 아니라 4곳을 더 다녔으나, 요즘은 3곳으로 줄여 자선원에는 매달 1번 정도 온다.

요즘들어 친구들이 이제 봉사를 그만 다니라고 말하지만 그냥 지나는 말로 흘러 넘긴다. 건강도 챙기고 취미로 등산도 하라는권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시설 생활인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는 "생활인들은 내가 안 가면 기다린다. 나도 와서 보고가면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때때로 지난 달에 왔을 때 봤던 사람이 열반에 들어 없을때는 서운하다. 내내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없으면 마음이 아프다"며 "오랜 만에 왔더니 병원에 가 있거나, 다치거나 병 때문에 방에서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볼 때는 더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때 머리를 손질 받던 김덕녀 씨는 "나도 그를 기다리는 사람 중 한명이다. 7년째 얼굴을 본다. 항상 생활인에게 격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이름도 불러주니 더욱 좋다"고 한마디 건넸다.

한 씨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자꾸 마음에 없는 소리를 던지며, 김덕녀 씨와 티격타격한다. 그는 이렇게 생활인과 격이 없이 지낸다. 이런 그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어 봤다. 돌아온 대답은 생활인들의 건강이다.

그는 "내 몸 건강한 게 제일이다. 건강히 내가 걸어 다닐 수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 건강이 따라줄 때까지 하고 싶다"며 "여기 생활인들도 무조건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이 제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얼핏보니 그의 머리카락에도 흰머리가 자라고 있었다. 처마 밑에서 거울 하나 놓고 시작한 세월이 흐른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원봉사를 해온 그는 자선원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올해로 자선원이 개원한지 32년이다.
▲ 서각 작업 중인 이영수 점장, 뒷편에는 직접 제작한 위패들이 보인다.

사업장 비결은 자리이타
동그라미플러스 이영수 점장


'탁! 탁! 탁!' 입구에 들어서니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장애인들의 자활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동그라미플러스 목공예작업실이다. 2000년 동그라미자활자립장으로 시작해 2009년부터는 사회적 기업으로 장애인의 취업 및 직업훈련을 돕고 있다.

목공예작업실에 들어서자 휠체어를 타고 생활인들에게 서각 작업을 지도하고 있는 이영수(42) 점장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꽤 능숙한 손놀림을 보이지만 이 점장에게는 아직 부족한 감이 없지 않나보다.

그는 "지적장애인에게 목공작업(서각)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복 작업을 통해 일을 익히더라도 금방 잃어 버린다. 하지만 가르치다보니 요령이 생기더라"며 "이들은 어떤 한 가지에 쏙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작업을 분업화 시켰다. 사람마다 잘하는 작업을 배분해 집중시켰다"고 비결을 밝혔다.

쉽지 않은 훈련작업이지만, 장애인들이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자립을 시작하는 첫 단계로 이 점장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그에게 애제자가 있다. 어느 덧 10여 년을 동고동락한 박철호씨다.

그는 "박철호씨는 초기에 집중력도 부족했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이제 서각 작업도 매우 능수능란하다"며 "얼마 전에는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을 도와줬더니, 이제 당당히 자기 차를 갖고 다니며 출퇴근도 한다"고 뿌듯해 했다.

제자가 한 명씩 늘어난다는 것은 그에게도 큰 기쁨이다. 생활인들의 스승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지만 그의 몸도 편한 것은 아니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생활인들에게 일방적인 가르침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나도 평소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종종 이들은 나의 발이 돼주기도 하고, 나는 그들의 손이 돼줄 때도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12명의 직원을 둔 점장이지만 겸손함이 묻어났다. 대화 중에도 계속 주문 전화가 밀려온다. 요즘 동그라미플러스의 목공예작품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판로가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판로 개척을 위해 행사마다 직업 물건을 들고 나가 판매하며 이름을 알렸다"며 "요즘은 지역 사회에도 많이 알려져 주문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 문화회관 1층에 있는 '기쁨나라'의 서각 작품 대부분은 우리가 제작하는 것이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신제품 개발도 도맡고 있다. 그의 손에서 우드펜이나 우드책갈피 등 다양한 물건들이 태어났다. 간벌목을 이용한 목공예 체험자재도 있다.

그는 "목공예 체험자재는 인기가 가장 좋은 품목 중 하나이다. 전량 '아름다운 가게'에 납품하고 있다"며 "산에서 베어지는 나무를 가져와 체험 자재로 만드는 것으로 버려지는 나무를 '재활용'하는 의미도 있다. 말리는 작업부터 모든 작업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회가 닿으면 생활인들과 함께 자립해 창업을 하고 싶다는 그는 장애인들이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갔으면 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시설 안에서는 생활인으로써 제약이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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