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감사생활이 삶의 표준
원친회 활성화 일익 담당하고파

화산 이화행(和山 李和行·76) 교도를 만나러 가는 버스 차창 밖, 봄 햇살 안고 있는 꽃들에 눈이 부셨다. 어느 하나 모나지 않고 두루 원만하게 피어있는 봄꽃들의 향연. 취재길, 마음의 휴식을 전하는 조화로운 선율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로움 속에서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삶, 이 또한 크게 나타남은 없지만 봄꽃마냥 눈이 부실 터, 이화행 교도의 기운이 그랬다. 그는 자신의 성격과 다르지 않는 자신의 법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운명처럼, 속명과 똑같은 그의 법명도 두루 원만한 행, 화행(和行)이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큰 수술을 받았어요. 2차 수술까지 20시간이 넘는 수술이었지요. 2005년 수술이후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내 나이, 여덟 살로 살고 있지요." 그는 안양 과학대학, 지금의 연성대학교에서 퇴직 일 년을 앞두고 치암 수술을 받았다. 신체 일부의 뼈를 두 곳이나 이식해야 했던 대 수술은 그의 마음에 귀한 깨달음을 전했다.

"내가 8살이니, 아들도 내 스승이고, 내 제자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거지요. 모두가 내 선생이니 하나 부끄러움이 없어요. 누가 짜증을 내도 서운할 것이 없고, 누구에게라도 배우려는 마음이 들지요." 그렇게 그는 자신의 삶을 젊고, 보람 있게 살고 싶은 맘이라고 했다.

그는 도산 이동안 대봉도의 아들이자 이성신·철행 종사의 친제이다. 그의 2남 1녀 역시 교무(이건종)와 정토(이원심)등 일원가족이다. 그에게 원불교는 모태안의 종교였다. 원불교가 교명을 확정한 원기32년이 그의 입교연도가 된다. 하지만 그는 원불교가 '가깝게 있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고 말했다.

"내 주변에는 훌륭한 분들이 너무너무 많이 있어요. 그분들의 큰 그늘 아래 있었지요. 그 그늘 아래서 오히려 나를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특히 원친회 회장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스스로 얽매여있는 자신의 상(相)때문에 느껴야 했던 정신적 부담감이 컸음을 언급했다.

"형님과 누님이 종사위에 올라가 계시고, 모든 교도들이 존경하니까, 그분들과 같은 입장으로, 도산님의 아들로, 교무와 정토의 아버지로 평가를 해요. 나 스스로도 생각의 오해를 풀고, 나를 찾는데 50년이 걸렸어요."

그는 일흔이 넘어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을 찾아가는 일련의 고뇌는 〈공적한 나를 찾아서〉라는 그의 정년 기념문집에 담겨졌다.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의 과정 또한 담겨진, 그의 삶의 흔적이자 자신을 찾아가는 기록인 것이다.

그는 이제 '일원의 진리 속에서 살면서 감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앙이 특별할 것이 없다는 그의 담백한 고백인 것이다.

"마음 하나에 모든 게 달려있어요. 특히 경계가 심하고 크면 클수록 감사를 원망으로 돌리는 기쁨 또한 크지요. 긍정적인 사고방식,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마음, 나와함께 하는 생활, 이런 생활이 화두가 아닌가 생각이 돼요." 자성의 정을 찾고 혜를 밝혀서 계를 행하듯, 그는 감사생활로 삼학의 표준을 삼고 있었다.

그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108배 선(禪)을 권했다. "108배 절을 올리면서 천천히 마음속에서 일원상서원문을 연마해요. 유념자리. 성품자리, 입정처 등을 꾸준히 연마하다보면, 한 생각 깨우쳐지는 것이 있어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의 녹록치 않은 내면의 깊은 수행과 깊이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최고령자로 입학해 평생 학습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4학년 1학기 중으로 자신의 공부를 재점검하며 꾸준히 교리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원불교문인회에 가입해 공부심의 기쁨을 글로 담아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교법실천 개벽단에 참여하며 단회 발표와 회화, 질의응답을 통해 신심을 다져온 그는, 이제 곧 새삶실천단을 발족해 도반들과 함께 신앙 수행의 깊이를 더해가고자 한다.

"나이 먹었으니, 태어났으니, 살았으니, 이제 마감할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가장 해야 할 일이 원친회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 이예요. 내 마지막을 그 일익을 담당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는 원친회의 활성화로 원불교학과의 신성 있는 출가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일념을 전했다. 특별할 것 없지만, 어느 누구라도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있는 그에게는 원불교인의 참모습이 오롯하게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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