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인정으로 짓는 밥 한끼

어려운 이웃이 늘고있다. 경산종법사는 신년법문에서 '인정미'를 강조했다. 이웃간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봐주며 온정을 건네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이웃과 함께 희망을 나누며 인정미를 전하는 현장이나 인물을 만났다.

1주 자선원·동그라미플러스, 2주 용인 은혜학교, 3주 군산 은혜의쉼터, 4주 원봉공회 빨간밥차 나눔현장이 게재됐다.
▲ 매주 노숙자 무료급식과 수해 현장에 달려가는 원봉공회 '사랑,해 빨간 밥차'.

앞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에서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몸도 마음도 간난한 이들을 위한 밥 한 끼, 원봉공회의 서울역 노숙자 무료급식이 해를 거듭하며 더 많은 '인정미'들을 모으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교도가 반찬을 보내는가 하면, 텃밭을 가진 교도는 기꺼이 농작물을 내줬다. 노숙자들에게 꼭 필요한 고기들도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전해온다.

교당과 교단 기관 뿐 아니라 정부 부처나 기업에서도 정성을 더하는 원봉공회 서울역 무료급식. 주 2회 5백여 명의 식사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크고작은 이 정성들 덕분에 빨간밥차는 오늘도 밥김을 올린다.

원기96년 5월4일 닭개장, 동그랑땡, 김치, 나물 반찬 150인분으로 시작한 무료급식, 허나 이 은혜나눔을 위해 원봉공회는 훨씬 이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기92년 태안반도 기름유출 재난 당시 약 8백여명이 모여 기름을 걷었던 원봉공회는 당시 봉사자들 밥을 해주던 이동식 급식차량을 보고 분양의 서원을 세웠다.

그동안 전국 곳곳의 수해현장에서 봉사를 해오던 원봉공회로서는 '저 밥차만 쓸 수 있다면 더 많은 힘을 수해에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BC카드 후원의 '사랑,해 빨간밥차' 공모에 지원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전국 13대뿐인 밥차를 지원받기는 쉽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된다는 일념으로 1년이 넘게 용산역 무료급식에 자원해 봉사하기도 했다.

"우리가 시작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공부한 거죠. 꼭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밥차를 분양받고 봉고식을 올리자마자 열흘만에 서울회관에서 독거어르신들 무료급식을 할 수 있었어요."

밭에서 수확한 유기농 야채

몸도 마음도 채우는 노숙인들 밥을 해온지 만 2년. 오예원 원봉공회장은 "사실 그렇게 준비했음에도 처음에는 손발 맞추느라, 봉사자 챙기느라, 부족한 예산 메우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봉사자 대부분인 서울교구 봉공회(한성봉 회장)원들에게 수요일과 금요일이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꼬박 일하는 날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제는 오후 두시에 서울회관 지하에서 시작하는 조리와 6~7시 배식, 이후 설거지와 뒷정리로 이어지는 봉사며 예산도 한층 안정된 원봉공회다.

"힘들다 싶을 때마다 귀한 정성이 들어왔어요. 그 힘으로 현장에서 봉공하는 거죠. 처음에는 서울교구 교당들이 일주일 비용을 전해주시더니, 아예 하루종일 조리부터 설거지, 비용까지 맡아서 하시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특히 5주가 있는 달에는 강남교당이 아예 맡아서 해주시지요."

수요일과 금요일 식재료부터 운행, 공과금 등을 합치면 대략 120만원, 이 '일주일 비용' 지원은 전국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초창기부터 신길, 서울, 강동, 여의도교당과 동군산교당, 특히 봉공센터를 짓느라 바쁜 부산교구 봉공회가 큰 힘을 보탰다.

"그런데 예산도 중요하지만 교도님들의 재능기부도 참 소중하거든요. 돈암교당 안현신 교도님은 '탱자나무집'이라는 조그만 식당을 하시는데, 겨울이면 국과 반찬을 해서 보내주셔요. 그것도 오리탕, 동태찌개 같은 영양식과 각종 견과류가 들어간 떡도 함께 나누시죠. 또, 화곡교당 전광원 교도는 여름가을 '우리 텃밭에 와서 다 수확해가세요' 하시면서 4950㎡의 유기농 야채를 다 내주십니다. 그럼 우리 봉공회원들이 배추며 고추, 감자, 부추 등 차마다 그득 싣고 와서 몇 달동안 요긴하게 쓰지요."

뿐만 아니다. 거래처를 찾던 중, 무료급식의 취지에 공감한 고기 회사들이 각각 돼지 고기 40kg, 소고기 20kg을 매달 기부해주고 있다. 계절 바뀔 때마다 지방 교당에서 올라오는 고추장 · 된장과 김장철이면 몇박스씩 배달되는 전국의 김치들.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도 늘 따뜻한 밥김을 올릴 수 있는 원봉공회의 힘의 근원이 바로 이 원근각지의 '인정미'에 있는 것이다.

"퇴직하고 1년동안 집에서 그냥 쉬었지요. 그러다 한경용 교도가 서울역 급식하는 데 가보자 해서 왔는데 오던 날부터 할 일이 많더라고요. 남자 봉사자가 부족해 식기며 음식 나르는 데 다들 애를 먹고 계셔요. 모처럼 느끼는 보람에 바로 시작했습니다."

작년 이대기 교도(화곡교당)의 등장으로 짐 나르는 데 한층 수월해진 무료급식. 특히나 울산의 둘째딸(동울산교당 이성인 교도)집에 갔다가 '5월 되면 올라가시라'는 딸의 요청에도 "나 밥 나르러 가야된다"며 아내도 놓고 혼자 올라온 참이란다. 매주 수·금 빠지는 법 없으니 이제는 노숙자들이 먼저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는다.
▲ 원봉공회 회원들이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이 밥 드시고 자력생활 하길'

오늘의 반찬은 콩나물무국과 제육볶음, 새송이버섯무침, 배추김치. 노숙자들 대부분이 치아가 약한 터라 콩나물도 고기도 모두 잘게 잘라서 조리해준다. 한번이라도 이용한 식기는 물론, 쟁반이나 고무장갑까지도 소독기에 넣어 위생을 살뜰히 챙긴다. 감사히 받는 교도들의 인정미를 잘 지키고 이어가기 위한 마음에서다.

"일주일이면 봉사자가 70명이니 1년이면 3천 6백명입니다. 이제는 급한 사정이 생겨도 알아서 다른 교도님께 부탁해 채울만큼 주인정신이 강해졌어요. 이번에 누가 어떤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하면 늘 함께 기도하고 헛되이 쓰지 않도록 노력하지요."

다양한 후원과 정성이 만들어내는 한 끼의 저녁식사. '이 밥먹고 건강해져서 자력생활하세요'라고 기도한다는 원봉공회 무료급식. 이 무료급식의 봉공정신은 사회적으로도 여러차례 인정을 받았다.

원기96년 강명권 사무국장이 보건복지부장관을 수상했고, 한성봉 서울교구 봉공회장은 원기97년 10월 'KBS 대한민국 나눔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후원금, 식재료, 봉사 등등 모든 부분에서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특히 빨간밥차 운행은 특별한 기술이기 때문에 더더욱 재능기부가 필요해요. 한시간 배식한다고 해도 전후로 참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그만큼 보람도 감동도 큰 봉공이 바로 이 노숙자 무료급식입니다."

아주 작은 정성이라도 큰 은혜로 나투어지는 원봉공회 서울역 무료급식. 부유하거나 특별해서만 할 수 있다면 진정한 봉공이 아니다. 누구나 분홍앞치마만 두르면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문턱, 서울역 무료급식은 오늘도 따뜻한 손길 한번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