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나는 이런 시대를 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서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참회록〉을 통해 기독교적 소명을 발견하여 자기의 정신적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 자서전은 자기의 정신적 성장과 경험을 주로 기술한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한 일체의 모든 자료, 즉 일기, 편지 등을 포함한다.

18일 오전 10시30분, 남양주시 노인복지관 분관 행복공간에서 70대 어르신들 6명이 모여 자서전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삶, 정리하며 자기 치유

3월7일 개설된 강좌는 벌써 7번째 시간을 맞았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모친 이야기 쓰기'이다. 본 강의에 앞서 지난주 수업했던 '부친 이야기 쓰기' 과제에 대해 어르신들이 발표를 했다.

"1982년 4월14일, 토요일이라 밀양에서 오전 수업을 끝내고 왔다. 아버지께서 면도를 해 달라 하신다. 나는 피곤하여 아랫방에 쉬고 싶은데 자꾸 부르신다. 내 손을 잡아당기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려 하신다. 그날 저녁 외삼촌과 어머니, 아들이 옆에 있는 가운데 평온한 모습으로 운명하셨다. 아버지 나이 64세였다. 고향이 가까운 유가면 초곡리 선영에 잠드셨다. 4남3녀 중 위로 넷만 성혼을 시키고 나머지 셋과 어머니를 남기고 먼 곳으로 가시기가 못내 아쉬워 내 손을 잡아당기신 것 같다.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새겨듣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이기숙(69) 어르신이 쓴 아버지 이야기의 끝 부분이다.

이기숙 어르신의 발표를 들은 동료들은 "당시의 부모는 엄부(嚴父) 자모(慈母)가 대부분이었다. 그 표현이 잘 드러났다. 또 섬세한 표현이 좋다. 같은 부모라도 남성이 표현하는 것과 여성이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남자임에도 엄부의 모습을 세세하게 잘 표현했다"고 감상을 나눴다.

와리 이원구(이하 와리 선생) 강사는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있다. 과거의 체험이 글에 녹아나서 구체적이다. 깔끔하게 정리하면 글이 돋보이게 된다. 구성법에 맞춰 다시쓰기를 해 다듬어 보자"고 어르신들에게 희망을 줬다.

다음 발표자는 30년 간 일기를 써온 강복천(78) 어르신이다. 그는 "쓰는 숙제는 좀 벅차다. 숙제 말고 강의만 들으면 좋겠다"며 "조상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다시금 더듬어 쓰는데 힘이 들었다. 또 부모에 대해 쓸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소개말을 했다.

그는 "30년 간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풀었다"고 말했다. 와리 선생은 "일기를 추려 한 권 책으로 엮어도 의미있는 책이 된다"고 이후 작업을 권장했다. 일기로만 있으면 어르신 열반 후 의미없이 사라질 염려 때문이다.

강 어르신의 아버지는 14살에 결혼을 했다. 그래서 제일 큰 자녀와 나이 차이는 불과 16년이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 젊어서 결혼을 한 것 때문인지 자식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 자식이라 따뜻하게 안아준 적도 없었다"며 "외동아들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욕심으로 두 명의 부인을 둬 자식만 13명이다. 어머니를 속이고 작은 부인을 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원망도 많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버지의 잘못만도 아니다. 14살에 결혼을 시킨 조부모의 상황, 또 외아들이기에 아들을 봐야한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 사람들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에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 도리임을 자각하게 된다.

어르신들은 자서전을 써 내려가며 부모세대를 용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 욕심으로 하는 일은 결코 끝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나도 주인공이 되다

글 쓰는 것이 처음이라는 김춘희(69) 어르신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왔다. 할 말이 많다. 그래서 자서전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강의를 들으며 역사공부도 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사례도 들으니 배움이 없는 나로서는 공부가 된다.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다"고 밝혔다.

눈시울을 붉히며 아버지 이야기를 발표했던 그는 "조상 이야기나 아버지 이야기를 쓸 때 새롭게 인식이 됐다. 아버지를 가까이서 만난 듯 했고 살아생전에 계신 듯한 착각도 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96세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그는 "21살에 부모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 이야기도 잘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어가며 써 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한 어르신은 "많은 고민을 했다.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감정이 따뜻하게 다가오지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하는지 틀을 못 잡았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줄거리를 잡았다"며 "성품 하나하나 줄거리를 잡았다. 다음 주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김영환(80) 어르신은 자서전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만행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또 그는 "전쟁 중 여성군인과의 사랑이야기, 간첩 잡은 이야기, 남북의 애절한 시대사적인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고 밝혔다. 나름대로 의미있게 살아온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반증이다.

와리 선생은 "어르신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노후 정리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7월까지 진행되는 '자서전쓰기' 강좌의 최종 목표는 합동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이다.

5월과 6월에는 어린시절 이야기와 형제, 청년시절, 군대, 결혼, 시집살이, 중년기의 활동, 장년기의 활동, 노년기의 활동을 정리하게 된다.

1시간을 버스타고 복지관 강좌에 참석하는 이기숙 어르신은 자서전 발간 계획에 대해 "자녀들이 칠순 잔치를 한다고 해서 하지 말자고 했다. 올해 내가 먼저 책을 내고 나중에 아내가 책을 쓸 수 있도록 돕겠다. 77세 희수에 맞춰 자서전을 다 쓰게 되면 가족들이 모여서 발간 기념회를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먹고 마시고 노는 희수잔치보다는 가족끼리 부모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와리 이원구 선생이 강의를 하고있다.

와리 선생은 "교직 퇴임 후 집에서 소설에 전념하다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복지관에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며 "시니어들도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자서전쓰기를 하는 일은 참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집에서 복지관에 오려면 1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 내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꾸준히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어 그는 "부모세대가 살아온 역사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면 폭넓게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며 "자선전 쓰기는 결국 폭넓은 자기 이해의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자서전 쓰기는 자신을 자랑하는 작업이 아니다. 어르신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될 때 자녀들 역시도 부모를 소중한 인격체로 모시게 될 것이다. 서로가 존중하고 인정하는 삶이 될 때 내가 세상에 왔다 간 일 역시도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자서전쓰기에 열기를 더하는 이유다.
▲ 김영완 어르신이 쓴 아버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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