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마음공부를 하는 공부인이라면 하루를 살아가는 공부표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표준 없이 살아간다면 아무리 교당 법회를 오래 다닌다고 하여도 공부의 깊은 실력을 쌓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공부인을 위한 하루일과의 표준으로 대산종사께서는 "아침은 수양 정진 시간으로 정하여 마음의 때를 벗기는 선(禪) 공부를 계속해서 나날이 새 마음을 기를 일, 낮은 보은 노력 시간으로 정하여 부지런히 활동을 해서 사은에 보답하여 나날이 새 세상을 만들 일, 밤은 참회 반성 시간으로 정하여 하루 동안 신·구·의 삼업으로 남을 해친 일이 있는가 없는가 반성하여 나날이 새 생활을 개척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위와 같은 하루 일과의 표준으로 공부를 해가다 보면 아침에 수양 정진을 하는 선공부를 하고 낮에는 보은 노력을 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많이 있으나 밤에 참회 반성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침에 선정진을 하는 공부인이라는 상이 생기기 쉬워 아침에 선정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시비심을 내기 쉽습니다.

또한 정작 선공부를 오랫동안 하였다는 공부인으로서 경계를 다루는 솜씨를 보면 여전히 다른 사람을 시비하는데 끌리거나 탐심 진심 치심에 끌려서 취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아침에 선정진하는 공부의 효과가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침에 선정진 공부하는데는 정성을 들이면서도 밤에 참회반성하는 공부를 하는데는 정성을 들이지 않은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종사께서 정전 제3수행편 제8장 참회문(懺悔文)에서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 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天業)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 육도(三界六途)가 평등 일미요, 동정 역순이 무비 삼매(無非三昧)라,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 물에 얼음 녹듯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가 이 도량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라 내 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볼 수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조의 참회요, 대승의 참회라 이 지경에 이르러야 가히 죄업을 마쳤다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부인의 하루 일과 중 아침에 선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밤에 상시일기를 기재하면서 참회반성하는 정진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가 됨을 자각해서 참회에 바탕한 마음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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