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얼굴 생각도 안난다
진안 마이산자락 4남매
월 생활비 100만원도 안돼

평균 수명의 증가로 한국 전통가정의 형태를 벗어나 새롭게 구성되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또 세대별로 인지하는 가족에 대한 의미도 다양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또 다른 가족이야기'라는 주제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1주 가족의 의미와 형태 변화, 2주 70대 부부의 일상, 3주 소년소녀가정의 애로점 및 실태, 4주 한센인 정착촌의 공동체 가족을 취재한다.
▲ 소년소녀가정으로 살아가는 3남매가 주말을 맞아 집에서 함께 컴퓨터를 하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달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가혹한 계절이 되기도 한다. 다 가질 수 없고 다 누릴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정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11일 전북 진안 마이산 자락에서 소년소녀가정으로 살아가는 정보라(19), 정해욱(18), 정지혜(16), 정주혁(14) 4남매를 만나러 진안으로 향했다. 익산에서 1시간쯤 달려 그들이 살고있는 근로자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가까이에서 4남매를 돌봐주고 있는 정규삼(76) 할아버지와 김순자(74)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할아버지의 안내로 4남매가 사는 집에 들어가는 순간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아파트라고 보기에 너무나도 비좁고 허름했다. 주방이자 거실로 쓰고 있는 좁은 방에는 낡은 TV와 컴퓨터가 놓여 있고 싱크대에는 냄비와 그릇이 쌓여 있었다.

39㎡밖에 안되는 집에서 살아가는 4남매의 고난한 삶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할아버지는 "이 집은 원래 아이들 고모가 살던 전셋집인데 아이들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며 "지금은 보증금 250만원에 월 10만원씩 내가며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작년까지는 좁은 공간에서 4 남매가 살았다. 올해는 큰딸 보라가 전북대학교 사범대학에 들어가면서 전주에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셋째 지혜도 장계 백화여고에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둘째 해욱이와 막내 주혁이만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상태다.

이들 4남매에게도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한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알콜중독으로 인한 가정불화는 이들을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아버지의 알콜중독을 고쳐 보겠다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중독증상은 전혀 호전을 가져 오지 못하고 오히려 심해만 가고 있다. 그러다 막내 주혁이가 3살되던 해, 지적장애 3급인 해욱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버지가 음주운전으로 차 사고를 내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가정불화가 심해졌고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10년 동안 연락 한번 없는 상황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밖으로 떠돌기만 했다. 그렇게 4남매는 부모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힘들게 지내야만 했다.

막내 주혁이에게 엄마에 대해 거듭 물었지만 "엄마 얼굴이 생각도 안 난다"고 말 할뿐 모자를 눌러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직 엄마곁에서 응석도 부릴 시기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어버이날 전북대에 간 큰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 바르게 키워 줘서 감사하다'고 전화를 했다"며 "그 전화를 받으며 아이들이 부모가 없어서 나한테 이러는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잘 해준다해도 부모의 자리는 대신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의 눈물인 것이다.

현재 4남매는 정부에서 소년소녀가정에게 지원되는 약 75만원의 생활비와 일부 단체의 보조금을 합쳐서 1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돈으로 월세, 기숙사비 등을 내면 넷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는 우리가 가까이에 있으면서 아이들의 밥도 챙겨주고 했는데 지난해 겨울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 돌봐줄지 모르겠다"며 "내년부터 큰 손녀의 대학등록금도 내야 하는데 참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앞에서 자그마한 수퍼를 운영하며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정형편도 말이 아니다. 아파트를 관리해주고 받는 돈 30만원에 하루 매출 1~2만원에 불과한 수퍼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손자손녀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마냥 손자손녀를 거들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4남매는 자신들의 처지를 일찍 깨달아 서로를 위하며 착하게 살아가고 있다.

저 우뚝 솟은 마이산 처럼 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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