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없다

▲ 철원교당 전경.
북쪽 하고도 더 북으로 가야 닿는 강원도 철원, 하지만 겨울이 반이라는 철원도 5월이면 푸르른 신록을 비켜갈 수 없다. 한들한들 초록기운 완연한 오후. 갑자기 평화로운 철원교당의 뜰에 한 무더기의 손님이 들이닥쳤다.

"철이야~ 원이야~ 교무님 철이 원이 밥 먹었어요? 데리고 놀아도 돼요?"
"삼목아 천천히 뛰어~ 다리 아파~"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이 참새 방앗간 들르듯 하굣길에 꼭 들러가는 철원교당, 이유인즉 날 때부터 다리가 세 개인 강아지 삼목이와 태어난지 50일 된 철이·원이가 그 주인공이다. '봉공이'의 새끼이자 서로 형제간인 삼목이와 철이, 원이. 거기에 길고양이였다가 어느새 식구가 된 '고양이 철이', '고양이 원이'까지. 꼬물거리는 강아지, 고양이들을 안아보려는 아이들 덕분에 철원교당의 오후는 늘 시끌벅적, 앞마당을 다 헤집으며 오래도 놀고 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문 열고 닫는 교당

"우리 교당은요, 하루라도 손님이 없는 날이 없어요. 월요일 커피교실, 목요일 교리공부, 금요일 일반법회에 일요일 군법회. 그리고요, 월화수목금까지 매일 저녁기도도 하거든요."

사정이 이러니 몇 번씩 교당 문 열고 닫는 게 주요 일과라는 정명하 교무. 손님용 테이블과 의자까지 들여 커피와 차, 과자를 늘 갖춰두고 있다. 작년 부임해 '이제 좀 철원을 사랑한다 싶다'는 정 교무. 익산에서 올라왔던 작년에는 철원 추위에 한여름에만 내복을 벗었더랬다. 5월이라도 법회 전에는 늘 보일러를 켜두어야 하는 철원교당. 하지만 무시무시한 추위 소문과는 다르게 교당 문 여는 교도들은 온기 가득이다.

"교무님, 여기 쌀 쪼금 가져와봤어요~ 부처님오신날 밥이라도 먹을까 해서요."

'쪼금'이라면서 20킬로 쌀포대를 턱 내려놓는 김종연 교도. 정명하 교무가 달여놓은 느릅나무 차를 마시며 뭐 해먹을지 소곤댄다. "그럼 내가 좋은 김 좀 살테니 김밥 싸먹을까요?", "얘들 잡채 좋아하니까 잡채는 제가 할게요." 몇 분만에 찰떡호흡으로 결정된 석존성탄절 메뉴, 사축이재가 아니고도 늘 이런 식이라는 철원교당이다.

"우리 교당 법회 출석은 스물 몇 명이라도 한 분 한 분이 다 몇 몫을 하세요. 우유 대리점 하시는 교도님은 우유 한박스, 양봉 하시는 교도님은 꿀과 프로폴리스 등을 가져오셔서 저렴하게 판매도 하시고 공양도 해주시지요. 우리 철원은 법회 올 때 갈 때 늘 두 손이 무거운 교당이랍니다"

어린이법회(일요일 오후)가 따로 있지만, 아이들은 금요일 오후8시 일반법회에도 참석한다. 엄마 따라, 할아버지 따라 교당오면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이모 삼촌들이 늘 반겨준다. 맨 앞줄에 앉아 기도까지 마치고 스르륵 빠지는 어린이들. 따라가보니 4학년 다은이가 여섯 살 정수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일요일에도 법회보고 교무님과 나가 놀아요. 교당 근처에는 학교도 많고 놀이터도 많거든요. 이번주엔 이 놀이터, 다음주엔 저 놀이터 가서 신나게 놀고 간식도 먹고요. 금요일이랑 일요일에 교당 안오면 뭔가 이상해요."
▲ 일반법회에도 참석하는 어린이 교도들.

고구마로 군교화 후원 감사

'뭔가 이상'한 건 교도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저녁기도에 커피교실, 교리공부, 금요일 법회까지 보고도 일요일 군법회에 간식 공양하러 온단다. 원기80년 강의와 출장법회로 시작한 철원교당 군교화, 일요일마다 군인들이 군대 차량으로 교당을 찾은지도 10년이다. 매주 일요일 1백명의 군인들이 찾는 철원교당 법회 간식 공양을 위해 교도들이 팔을 걷어부치는 것이다.

"마당에 천막 보셨어요? 우리 군인들이 법회 끝나고 담배도 피우고 잠깐 쉬기도 하는데 마당에서 비맞고 눈맞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군종교구장님께 요청해 천막을 받았지. 그런데 천막 받고 나니 의자도 내주고 싶고 테이블도 주고 싶은 거 있죠? 그래서요, 한참 마당에서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답니다."

철원은 군교화로 유서깊은 교당이다. 특히 군교화를 위해 일찌감치 은혜의책보내기 운동을 펼쳐왔으며, 그 결과 7년전에는 제6보병사단 대대급에 병영도서관까지 올리기도 했다. 법회 내공도 깊어 PPT를 이용한 설법은 물론이요, 간식 먹으면서는 요즘 군인들에게 인기최고인 '푸른거탑'도 틀어준다. 최근엔 인근 부대에 원불교학과 학생이 2명이나 들어와 군교화에 탄력을 더하고 있다. 하필 군대 차량이 없는 부대라 정 교무가 직접 태우러 다니지만, '휴가 나가는 길에 교당에 인사하고 가겠다'는 전화 한통에 신나게 시동을 건단다.

"우리 교무님은 아주 만능이세요. 오셔서 커피교실을 열어서 비교도들도 오지, 운전도 잘하시지, 교화도 잘 하시죠. 참, 우리 교무님 농사도 잘 짓는데 우리 고구마밭 보셨어요?"

교도들이 후다닥 일어나 안내하는 고구마밭, 1천㎡에 달하는 이 밭은 구리교당 전종운 교도가 군교화를 위해 내준 땅이다. 작년 한해 고구마를 심어 50여박스가 나왔다. 이 고구마들은 군교화를 후원하는 전국의 교당과 기관, 단체에 감사의 의미로 보내고 일부는 판매해 수익금으로 간식비를 지원한다. 떡볶이, 순대 같은 분식이나 떡, 빵 등에 커피나 차를 함께 내는 간식을 위해 밭 한 켠에는 요리할 때 많이 들어가는 파와 마늘 등도 키운다. 밭과 교당 사이 교도집이 네 집이나 되니, 교당 오가며 물주고 살피는 게 철원 교도들의 일상이다.
▲ 아들내외, 손주들까지 함께 다니는 한원오 최청원 부부.


방과후 요가교실로 청소년 교화 기지개

"이렇게 교도님들이 잘 해주시니 든든하지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학생회도 살려보려고 방과후교실에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정 교무는 올해 3월부터 철원여중 방과후교실과 특기적성프로그램에서 요가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 수업을 맡던 교사는 이전 교무인 이세윤 교무가 요가수업을 통해 지도자로 키운 이진경 교도였다. 이 교도의 이런저런 노하우 전수받은 정 교무가 교당 문을 활짝 여니 학교와 교당 사이가 부쩍 가까워지고 있단다.

"며칠 전에는 야외수업을 신청해서 교당에서 했거든요. 강아지랑도 놀고 간식도 먹다보니 '교무님 원불교가 뭐예요?', '저 동그라미는 무슨 뜻이에요?' 저절로 묻더라고요. 오가는 학생들 많아지니 곧 청소년교화도 잘 되겠지요?"

법회가 끝난 후 파이와 오렌지, 요거트를 함께 먹는 다과가 이어졌다. 내 식구 네 식구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교도들이 '고구마 심는 날'을 정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아이들은 하굣길에, 어른들은 퇴근길에, 어르신들은 기도오는 길에 저마다 돕겠다고 나선다. 교도들 봉공심과 정성으로 영글어가는 군교화와 청소년교화, 올해도 철원교당 고구마밭은 씨알 굵은 풍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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