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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공동체, 대교 개통 이후
소록도공동체, 대교 개통 이후
  • 나세윤 기자
  • 승인 2013.05.24
  • 호수 16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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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영역 침범 늘어
공동체의 새로운 대응
'소록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애환과 파란만장한 한센인들의 삶이 묻어 있는 이름이다. 공간적으로 고립되기도 했지만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과 핍박의 상징이었다. 소록도가 이렇게 한센인들의 집단 주거지로 된 때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부터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한센인 집단수용소로 출발한 소록도갱생원은 건물이 501동에 달할 정도로 수용인원이 많았다. 갱생원과 주변환경 정비도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동으로 이뤄졌고, 체벌과 저임금 등의 핍박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계속됐다. 집단수용소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소록도갱생원을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명칭을 개정하고 환자 격리수용공간에서 치료위주의 병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현재 소록도에는 한센인과 의료진, 자원봉사자 등 7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소록도의 큰 변화는 소록대교의 개통이다.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외부와의 소통이 24시간 가능해졌다. 한센인들의 치료와 보호라는 명분으로 통제해 왔던 섬이 개방된 것이다. 소록대교 개통 이후 국립소록도병원 방문객 수가 전년 대비 5.7배 증가한 통계에서 보듯 외부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관광객들의 증가로 수십 년 동안 꾸려왔던 소록도공동체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한센인들의 사적인 영역이 침범되면서 자치조직의 활동이 방어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한 한센인은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니까 원생들이 오히려 손님이 된 기분이다"며 "전동차 타고 이동하는 장애인의 길을 양보해 줘야 하는데 관광객들이 가운데 서서 비켜주지 않는다"고 토로할 정도다.

다른 한센인도 "배 다닐 때가 더 나은 것 같다"며 "그 때는 참 조용하고 차도 많이 안다녔는데 요즘은 관광객들 때문에 괴로운 일을 많이 당한다. 쓰레기도 많아져 환경이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소록도가 육지와 바로 연결된 후 예기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공동체의 대응도 자치조직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소록도는 국립소록도병원 중심의 치료공동체다. 한센병 양성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된 사람은 오밀조밀한 주거시설에 거주하며 텃밭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대체로 이곳의 한센인들은 익산시 왕궁면 소재 정착촌의 사람들보다 질병의 정도가 심한 편이다. 거동이 불편해 자유롭지 못한 환자부터 눈이나 코, 발, 손가락 등이 없는 중증환자들이 많아 실질적으로 적극적인 공동체를 꾸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자치조직이 있어 활동 중이지만 젊고 병의 정도가 가벼운 한센인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오히려 병원의 관계자들과 치료를 하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하는 의사나 간호사부터 자원봉사자로 장기간 거주하는 이들과 정을 나누며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한센인공동체이지만 의료인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를 보인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록대교 개통 이후 관광객들의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제는 이 부분도 소록도공동체가 안고 가야할 도전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소록도(小鹿島)는 작은 사슴모양을 한 섬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그리고 역사·문화적으로 볼거리 읽을거리가 풍부해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관광 상품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섬의 주체가 되는 한센인들은 병원중심의 공동체로, 오랜기간 함께 해온 이웃사촌간의 정으로 또 다른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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