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절대적인 사랑으로 보살피고 키웁니다. 저도 4살된 첫째 딸아이에 이어 백일이 갓 지난 둘째 사내 아이를 키우는데 둘째에게는 첫째가 입었던 헌옷을 입히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입었던 헌옷은 여자 아이의 옷이어서 색깔이나 모양이 여자아이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삶고 빨기를 계속해서 너덜해진 말 그대로 헌옷이고 크기도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둘째 아이는 어떠한 옷을 입혀 놓아도 방긋방긋 웃으며 노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은 바로 아이가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신(信)은 제자가 스승에게 온통 바쳐 버리는 것이니 설사 스승은 모른다 하더라도 밑에서는 바치고 또 바치고 하는 것이 신이다. 의(義)는 한번 바친 그 마음이 영겁을 살리고 통하여 어떤 순역 경계에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이 의(義)이다. 자신이 신의(信義)만 갖춘다면 스승의 믿음과 사랑을 구할 것이 없다. 나에게 신의만 있다면 스승의 법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아올 수 있다. 그 때에는 스승이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신전수(全信全受)요, 반신반수(半信半受)며, 무신무수(無信無受)인 것이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전신전수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바치기는 어려우니 내 마음에 맞고 나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믿고 바치고 그 외 나랑 맞지 않거나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믿지 않고 따라서 신을 바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신전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그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따르듯이 제자가 스승에게 어린 아이와 같이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절대적으로 믿고 받드는 것이 전신전수(全信全受)의 심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신성품 제7장에서 "도가에서 공부인의 신성을 먼저 보는 것은 신(信)이 곧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모든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신이 없는 공부는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결과를 보지 못하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도를 깨닫는다는 것은 일부만 깨달아서는 참다운 도를 깨달았다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참으로 마음공부에 발심하여 도를 깨닫고자 한다면 반드시 전신전수(全信全受)의 심법으로 스승에게 절대적 신의를 바치는 마음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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