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께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자"
생활의 중심 공간인 기도실
지극한 기도 정성, 위력 나타나

▲ 이정명 교도(사진 왼쪽)와 부인 배혜명 교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분명 설렘이 있다. 그 설렘은 일상의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의 성찰이 되기도 한다. 가슴 속 잔잔한 설렘을 담고 도착한 해산 이정명(海山 李正明·79) 교도의 아파트, 입구 화단에 심어진 장미꽃이 색색이 곱고 선명했다.

회색빛 아파트 한 켠, 누군가 심어 정성 들였을 꽃송이들에 건물도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없이 환해졌다. 교도회장을 역임한 그가 정문으로 마중 나와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인사를 건넸다. 자투리 빈터에 싱싱한 생명들을 키워내고 있는 이가 바로 그의 아내(배혜명 교도)였음을 이내 알게 됐다.

집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곳이 있었다. 대종사와 역대 선진들이 모셔져 있는 기도실이다. 영정 사진뿐만 아니라 선진들의 유품과 원로교무들이 전한 소소한 선물까지 정결하게 모셔져 있다. 이들 부부의 하루 생활이 시작되는 곳이자 하루 일이 마무리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오고 나설 때에도 한 번도 빠짐없이 합장 인사를 하는 곳이다. 그의 마음속에,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중심이 되는 일원상 진리 신앙, 그 절대 신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른들을 모시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 분들의 유품과 선진들이 전한 물건 하나하나에는 그분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지요. 그 소중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소중함만큼 정성 또한 극에 달하는 법. 기도실 탁자 서랍에는 부부의 '기도금'이 준비돼 있다. 구김하나 없이 깨끗한 지폐를 매일 새벽 기도전에 '감사 성금'으로 올린다.

"어른들께 기도드리면서 어찌 빈 마음으로 드릴 수 있을까 싶어 준비해두고 있어요. 또 감사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감사함을 성금으로 모으고 있어요." 5만원권 지폐마다 붙어있는 포스트 잇에는 감사했던 일들이 메모되어 있다. 가족 전체가 한 달에 한번 교당에 모여 법회를 보는 '대박나는 날'의 기쁨도 물론 감사성금이 됐다.

잔돈은 잔돈대로 모아놓은 가방이 있었다. 동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이렇게 매일 올리는 기도금과 감사성금, 또 동전 가방들은 그대로 백년성업을 위한 성금이 될 것이다. 일원대도 회상을 위한 지극한 정성, 이는 생활의 처음과 끝이다. 곧 그의 삶 전부나 다름없었다.

어른들이 모셔져 있는 그의 집은 풀 한포기도 제 빛을 생생하게 발하고 있었다. 도심 속 공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나무마다, 꽃 화분마다 초록빛이 선명하다. 부족함 없이 원만구족한 신앙 수행의 삶 이면에 담겨진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큰 형님이 시국사건에 연루되면서 집안이 급격히 어려워졌어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퇴 후 서울에 올라가 참 많이 방황했지요. 중국집 종업원일도 해보고,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기도 했어요."

어려움 없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는 생각이 빗나갔다.

그가 젊은 시절, 고향인 영광군 군남에서 6km를 걸어 영산성지를 구경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은사와 함께 걸어서 영산성지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어요. 그때 형산 김홍철 종사님께서 대중 7~8명과 함께 점심을 드시고 계셨는데, 낯선 객이 찾아가니 식당에 밥이 있느냐고 물으셔요. 마침 밥이 없었던 터라, 종사님께서 그릇 두 개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대중 밥을 한 숟갈씩 뜨고 시래기 국을 나눠서 두 그릇을 만들어 주셨어요. 시장해서 맛있게 잘 먹었지요. 그때 원불교를 알게 됐지요." 그런 연후로 그는 쌀 몇 말을 지고, 영산성지에 찾아가 두 달 가까이 지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이후 다시 상경해 동국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때 교편생활을 하고 있던 부인과 결혼했고, 다시 법원 시험을 준비해 34세의 늦깎이에 공무원 생활에 접어들었다. 그때까지도 원불교에 정착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39세에 강경으로 부임하면서 원불교에 정착한 것 같아요. 10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한 시간씩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신앙해 온지 40여 년이 됐습니다." 그는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면 '우연 자연한 가운데 위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가 전하는 실제 그 기적 같은 일들은, 실로 지극한 기도정성에 감복한 진리의 보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에게 교단일은 곧 자신의 일이다. 교단의 대소사에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별반 없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이 했던 일이 아닌, 교단 심부름을 대신 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정혜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은 바람도 같은 맥락에서다.

"진리의 신은 반드시 살아계십니다. 진리께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원대도 영겁법자 일원회상 영겁주인이 되고자 하는 염원이 간절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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