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효도하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지요"
병마에도 한결같은 신심
자녀 셋 모두 출가

시원한 그늘이 반갑기만 한 6월의 월요일, 부산 대연교당을 찾았다. 교당에서 진행하는 개축불사기도를 마친 원타원 이봉원(元陀圓 李奉元·74)교도가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그는 이내 자리에 앉기를 권한 뒤 입교한 내역을 설명했다.

"학창시절부터 삶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어 교회나 절도 가보았지만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곳이 통영교당이었습니다. 그날 대산종사께서 교리 강습을 하셨고 모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후 학생법회에 참석한 그는 이듬해인 원기42년 입교했고 즐거운 교당생활을 보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그는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숙부의 도움으로 부유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진주농대(현 경상대학교) 농가정학과에 진학했으나 장남이던 오빠가 세상을 떠나 대학을 중퇴하고 집안일을 도우면서 전무출신의 꿈을 꿨다.

"출가를 한다고 하자 불교신자이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까지 환영했는데 집안경제를 책임지시던 숙부께서 '염세주의자도 아니고 환경도 좋은 네가 왜 하느냐, 네가 만약 출가한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본에 모셔가고 네 명의 동생 학비도 일체 대지 않겠다'고 결사반대를 했습니다."

결국 전무출신의 뜻을 접은 그는 은행원이던 남편과 가정을 꾸렸다. 결혼 당시 그는 '원불교 못 가게 하면 살지 않겠다', '원불교에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 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시댁으로부터 받았다. 또 속으로 '대호법하자, 거진 출진 잘하자'를 결심했다.

결혼 후에도 그는 교당 생활을 정성으로 매진했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느낀 그는 삼남매를 데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교당 법회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남편 직장관계로 이사를 자주 다녔던 그는 이사를 갈 때 교당이 어디 있는지 미리 물어 되도록 교당 근처로 집을 구했다.

"생활이 편해야 교당 가기가 쉽습니다. 교당 근처에 살다보니 기도생활도 수월하고 아이들이 놀 때도 교당에서 노니 자연스레 교법과 가까워졌습니다. 부산에서 서울 갔을 때와 마산으로 다시 왔을 때 말투가 달라 아이들이 교당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용돈을 주거나 간식을 많이 만들어 교당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친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40대로 들어선 그에게 숙부의 열반, 경제적인 어려움, 병마와의 싸움 등 시련이 닥쳤지만 그를 일으킨 것은 큰 아들의 '청소를 하더라도 전무출신을 하고 싶다'는 편지였다.

"사실 아이는 아직 사춘기였고 전무출신 하게 될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그 날 이후 생활에 활력을 느꼈고 왠지 모를 희망이 뇌리를 스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종교적 신념이 달랐던 남편으로 인해 자녀들의 출가문제를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 슬하의 삼남매(남성균, 세진, 근옥) 모두가 출가를 했다.

젊은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병원에 입원한 날을 제외하면 교당 법회와 기도는 빠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 교당 교무님과 상의하면서 방법을 찾곤 했다. 33세부터 27년간 그를 괴롭혔던 아토피 피부병 또한 완쾌됐다. 우연한 기회에 마신 물로 효과를 봤고 이 또한 사은의 은덕이라 여기고 있다.

"법호를 받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장녀로서 어머니께 해드린 것이 없어 괴로웠는데 법강항마위가 되면 부모님이 소희사위에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더 정진했습니다"

법사가 된 그는 남편에게도 법위를 받아 시어머니께 효도하자고 권했다. 완고하던 남편은 퇴직 후 100일 기도 참여는 물론 공부인으로 변했고 대연교당 교도회장까지 역임했다. 2년 전 열반한 그의 남편은 올 6·1대재 때 정식으로 법위를 받았다.

원기73년부터 100일기도, 두 번의 천일기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허리협착증과 관절염을 앓는 지금도 새벽4시에 기상해 집의 기도실로 가 앉은 채로 100배를 올리고 5시부터 원100년성업 대정진기도를 실시한다. 그의 바람은 원100 5대지표인 교화대불공, 자신성업봉찬, 세계주세교단건설, 대자비교단, 보은대불사와 대연교당 개축불사기도가 원만히 이뤄지는 것이다.

"항상 이생이 사람 몸으로 온 마지막 삶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면 기도, 법회를 참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생, 이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내생에 다시 인간으로 올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열심히 정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정산종사 법어〉를 한 시간 이상 정독하는 그는 매일 일원상서원문 50독과 1분 기도를 실시한다. 각종 훈련, 성지순례에도 몸이 더 아프기 전에 참석해 대종사의 훈증을 얻도록 노력하는 그에게서 영생의 공부인, 정성의 공부인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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