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기고 못생기고 관계없어

▲ 강성원 교무/보험사업부
예비교무 시절 나는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한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대산종사가 계시는 왕궁 영모묘원에 가 볼 것을 권했다. 여학생들은 지원자가 많아 기간을 정해 놓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남학생은 그냥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모묘원에 간 다음날 나는 왜 남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대산종사를 모시는 시간보다도 작업을 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저녁에는 주로 모감주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도 대중 접견시간에 비닐하우스에서 대산종사의 법문 듣는 재미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원평교당에 있을 때다. 달력 뒷면에 법문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공책에 옮겨 적고 있었는데 대산종사께서 "그 법문은 지금 내가 연마하고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말라 "고 하셨다. 그 때 나는 법문을 하실 때마다 몇 번이고 연마 하시는 줄 처음 알았다.

신도안 삼동원이 지금의 벌곡으로 옮겨온 직 후 나는 군대 가기 전 3개월을 그 곳에 보냈다. 대산종사께서는 오전에는 시자들과 이 곳 저 곳 훈련원 터를 보셨고 예쁘게 생긴 돌이 있으면 주어 오게 했다. 한번은 주위에 죽은 가죽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가지 하나까지 다 주어 오게 하셨다. 그 나무들은 공장에 보내 염주알로 가공했다. 나는 염주알 중에서 구멍이 나거나 흠집이 있는 것을 골라내고 있는데 대산종사께서 보시고는 "그것도 다 넣어서 만들어라"고 하셨다. 나는 "왜 흠집 있는 것을 넣어야 하는가요?"하고 물으니 대산종사께서는 "신심이 있으면 잘생기고 못생긴 것 관계가 없다"고 하셨다.

당시 삼동원을 생각하면 죄송스런 일이 하나가 있다. 당시 대산종사께서는 쌓아놓은 가죽나무 옆으로 가시더니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너 이것을 깎아서 염주 한번 만들어 봐라"고 하셨다. 나는 그 나무를 염주 만들기 좋은 부분으로 여덟 토막을 내서 칼로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동원은 염주만 깎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틈나는대로 깎았지만 다 마무리를 못하고 군대를 가게 됐다. 제대 후 복학하니 깎다 남은 염주가 있었다. 나는 다시 마무리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또 마무리를 못하고 잊어버렸다. 교무가 돼 한 때 몸이 아파 수계농원에 있을 때 대산종사를 다시 날마다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도 이제라도 염주를 마무리해서 드려야지 하다가 또 미루다가 결국 대산종사 열반 후에야 완성하여 영정 앞에 놓아 드리며 나의 게으름을 한참이나 자책했다.

열반 두 달 전쯤 대산종사께서 수계농원에서 시자를 시켜 발타원 정진숙 종사와 주타원 윤주현 종사를 수계농원으로 부르셨다. 다음날 두 분이 오시자 손을 잡으시고 두 분에게 "이곳에 훈련원을 지어 훈련을 시키라"고 당부하셨다. 당시 퇴임 하신 두 분께 왜 그런 부탁을 하셨는지, 주위가 공장 지대이고 소음도 있고 냄새도 나는 수계농원을 지키려고 하시는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나는 대산종사의 속 깊은 뜻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짧은 지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산종사는 종법사로 재임한 33년간 각 지역에 훈련원을 짓게 하시고 교도훈련, 국민훈련을 강조 하셨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공들인 것은 인재 양성이었다. 늘 법문을 통해 신심, 공심, 공부심을 일으켜서 자발적으로 사업을 하도록 이끄셨다. 그로인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업이 오래가고 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바탕에 마음공부가 중심이 돼야 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공부위주 교화 종 교화 위주 사업 종'은 지금 사업기관에 근무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새겨야 할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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