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동네 아이들끼리 싸움을 할 때 한 아이가 "집에 있는 우리 형 싸움 잘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 아이는 "더 큰 삼촌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먼저 아이는 "우리 아빠가 더 세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든든한 의지처가 있어야 당당하게 됩니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믿을만한 든든한 대상이 있으면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자신할만한 의지처입니다.
여러분이 힘들 때, 기쁠 때 함께 하고 의지할 존재는 누구인가요?

예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서로의 교리에 대해 회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대해 해석을 달리 합니다. 곧 성부인 하나님과 성자인 예수님과 하나님의 협조자인 성령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숭배하지만 신앙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적 관점으로 보면, 법신불과 화신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나누어 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십니다.

이들은 저에게 원불교는 누구를 믿느냐고 묻습니다.

원불교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를 주시고 의지하는 대상을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법신불의 모습은 '○'입니다. '○'을 우리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천지님, 부모님, 동포님, 법률님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합해서 사은님으로 부릅니다.

형상 없는 '법신불'과 형상 있는 '사은님'을 둘이 아닌 하나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법신불 사은님'이라고 합니다. '사은님'의 내역은 곧 우주만유입니다. 우주만물 전체의 그 모양은 너무 커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이 모양을 보신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신 것이 곧 '일원상'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도 이런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찰단 일행이 와서 귀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느냐고 묻자 밖에서 일마치고 돌아오는 산업부원 일동을 가리키시며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고 하십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깊게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으신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에게 법신불 사은은 어떤 분인가? 법당의 일원상이 떠오르나요? 저 대자연의 은혜가 느껴지나요? 내 생명의 근원인 부모님이 떠오르나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도움을 주는 동포들이 느껴지나요? 법률이 생각나나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세요. 가족, 직장 동료, 손님, 다양한 형태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존재가 나에게 기쁨도, 괴로움도 직접 주고 계시는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나의 본래 모습이 또한 일원상입니다.

<삼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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