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직 원무 / 중흥교당·정보산업학교

원기82년 원무제도가 시작된 지 10년. 그러나 난 아직도 원무활동에 대한 결심이 서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교육활동을 교법정신으로 하는 것이 세상일을 잘 하는 것이고 교화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서였다.

동네 형인 서광원 교도를 따라 탁구치러 간 것을 인연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당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음공부는 딴전이고 호기심을 채우는 재미에만 흠뻑 빠져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대학과 군대시절 늘 교당을 찾아 다녔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교직활동을 시작했다. 교무님과 순교도 하고 법회 사회도 보면서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당 청년회 활동을 하며 때때로 삶에 관한 진지한 회의도 가졌다.

목요일 청년법회에서 교전공부를 하며 일원상의 진리를 놓고 눈먼 씨름을 한 적도 많았다.

그러저러한 인연으로 교직생활 42년의 뼈대는 맑은 마음, 밝은 생각, 바른 실천이라는 명제로 일관할 수 있었다. 이는 소태산대종사의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가 원천이었음은 물론이다.

퇴임 후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몇 학기 강좌를 수강하며 활동거리를 탐색했다. 기본적 성향이 교화와 교육을 떠나서는 별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즈음, 봉공회 활동으로 소년원법회에 참여했다.

○○정보산업학교. 삼엄한 정문과 사무실 문을 통과 후 넓은 운동장을 지나 창살로 된 두 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원불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로 나누어진 법당을 찾아 들어갔다.

잠시 후 건장한 학생 10여명이 들어왔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팔 다리는 물론 어깨와 등까지 이어지는 꿈틀거리는 용들이 새겨진 우람한 청년들. 법회의 진행과는 상관없이 쉴 새 없이 드러내 놓고 큰소리치거나 웅성거리는 어깨들. 빨리 법회 끝내라는 노골적인 요구들, 법회 후 학생들과 간식을 나누다 보면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간식거리들, 아, 여기는 또 하나의 다른 세상임이 분명했다.

비록 교무님이라 할지라도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임이 분명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교무는 가끔씩 웃어가며 법회를 진행했다. 교무님을 대신해 법회를 운영하는 선배 은산 김천길 교도의 인내력에도 무언의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시작한 소년원에서 원기94~95년 선배와 함께 시험 삼아 법회를 운영했다. 그 뒤 당시 중흥교당 김선영 교무의 추천을 받아 원기96년 소년원 교화를 담당하는 원무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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