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친구삼고 일해

▲ 이오은 교무/UN총부사무소
"천이 천말을 하고, 만이 만 말을 해도 너는 종교연합 일을 계속하거라. 지금 안 되면 10년 뒤에 될 것이고, 10년 뒤에 안 되면 100년 뒤에는 반드시 될 것이다"

원기76년 소태산대종사 탄생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종교연합 회의를 지켜보시고 대산종사께서 해 주신 말씀이다. 천명이 있으면 천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만 명이 있으면 만 가지의 아이디어로 말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친히 내려주신 유언으로 믿고 이해받지 못할 때나 방해하는 사람이 생길 때나, 억울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나, 나의 천명으로 알고 지키는 교훈이 됐다.

원기62년 교편생활을 하던 중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대산종사님을 만났다.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출가를 서원하자 주위사람들은 "바로 편입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대산종사께서는 "의무기간인 교편생활 2년을 끝내고 출가해라. 그것도 법률은의 실천이다"고 하셨다.

교편생활을 하고 있던 학교로 원기63년 총부에서 편지한통이 왔다. 열어보니 대산종사께서 매직펜으로 쓰신 친필 '전신전수, 전탈전여(全信全受, 全奪全與)'였다. '온통 바치면 온통 받게 되고, 전부 빼앗으면 전부 준다'는 믿음과 인과에 대한 법문이었다. '천지가 시험 할 때 잘 견디고, 교편생활 하는 동안 다른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출가서원을 잘 간직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드렸다. 이 법문은 평생 생활 지침이 됐다.

정화원에 입사 후 한달 정도 됐을 때, 송대 뒷산에서 대산종사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데 "네가 우리 선진이다. ○○○같은 선진이다" 하시고 "지금 부터 서원하나 더 세워라. 그리고 영어공부를 해라. 방학 때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서울 가서 영어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너무도 놀랐다. 주위에 원불교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부모와 형제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 유성출가를 했다. 시골에서 선생이 되어 모두의 선망의 대상으로 잘 살아가던 딸이 전혀 모르는 종교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간다고 말렸다. 그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출가를 했는데 "또 하나의 서원을 세우라"고 하시니 그 뜻을 몰랐다. 그리고 정화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선진님에 관계되는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사진을 보니 내 어릴 때 사진이랑 똑 같았다. 그분의 습관이 현재 내 습관과도 너무도 비슷해서 놀랐다.

방학 때마다 대산종사가 계신 곳에서 보냈다. 원기64년 미국에서 근무하는 교무에게 "해외포교사로 키우는 학생"이라고 소개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건강이 나빠져 그때 기숙사에서 돌던 폐결핵을 앓고 말았다. 해외교화에는 안 맞다고 판단한 교육부장이 나를 데리고 대산종사께 갔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병은 친구삼고" 하시며 한마디로 끊으셨다. 그 말씀 때문에 나는 아플 때 마다 병을 친구삼고 일하고 교화하며 수행했다.

원기86년에 나는 미국 초기 생활 10년 만에 탈진이 되어 임시 치료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6개월 동안 대산종사를 모시고 매일 3번 식후에 산책을 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수행에 관한 질문, 교리해석에 관한 질문, 그리고 종교연합운동에 관해 여쭈어 보고 자상한 지도를 받았다. 그 기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산종사는 나를 키워주시고, 나의 천명을 알게 해 주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또 하나의 서원인 종교연합운동으로 세계 주세교단 건설에 여한 없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대산종사께서 나를 출가 전 부터 알아보고 키워주셨던 것처럼, 나도 지금부터는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에 전념 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