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3개월 만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세상물정 모르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이듬해 태어난 아들 양육으로 시어머니를 모셔오게 됐다.

남편은 근무지가 달라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시어머니, 아들, 나 셋이 일하며 생활하는데 철없는 나에게는 인자하신 시어머니, 아들, 그리고 새로 옮긴 학교생활이 벅차기만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친정어머니께 걱정 끼쳐 드릴까봐 말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들 양육과 직장 일을 하며 요란한 마음이 감당이 안 돼 〈교전〉을 보기도 했으나 잘 들어오지 않았다. 교무님이 계신 교당에 다녀와야 살 것 같았다.

당시 춘천교당에 가려면 자가용이 없었던 시절이라 버스로 왕복 3시간정도 소요됐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춘천교당에 가면 교무님들께서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친정어머니를 뵌 듯한 마음으로 법회를 보고 왔다.

너무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교당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아 자주는 가지 못했으나 교당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가족, 직장 동료, 학교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3년이 지나 교당이 있는 화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매주 아들과 함께 교당에 가면 교무님과 교당 어르신들께서 마치 친정에 온 딸처럼 대해 주셨다.

공부도 더욱 열심히 했는데, 공부 잘하시는 교도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이후 공부담 발표 시, 〈교전〉 공부와 공부한 내용을 실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닮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전〉을 보니 〈정전〉은 너무 어렵고 〈대종경〉은 구구절절 대종사가 나에게 하는 말씀 같았다.

산란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이 책 저 책 많이 읽었지만 〈대종경〉 만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때 경험으로 〈교전〉을 선물할 때 처음에는 〈대종경〉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또한 교무님의 검소하신 생활모습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매섭게 추운 화천의 겨울에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스티로폼으로 바닥과 벽에 대고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고, 속옷까지 기워 입으시며, 교도들에게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흉내라도 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육아와 학교생활, 야간 자율 학습 감독 등으로 일요일 아침만큼은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너무나 훌륭하신 교무님과 따뜻한 교도들을 만나는 법회만큼은 빠질 수가 없었다. 교당 주무님들의 자신감 있고, 여유로우며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그런 힘이 원불교의 신앙과 수행에서 나왔음을 알게 됐다. 원불교, 교당, 교무님, 교도들은 공부심 부족한 나에게 배움터요 안식처가 됐다.

교무님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말을 하면 함께 기도해 줘서 큰 위로를 받았고 서서히 나의 종교의 뿌리를 내리게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교전〉 공부며 교당 일은 전혀 못하고 법회만 참석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큰 힘이 됐다.

그때부터 법회출석은 원불교 공부와 마음공부의 첫 관문이자 가장 확실한 지름길임을 알았다.

그 때 교무님의 정성이 오늘날 나의 신앙의 밑거름이 되어 주신 은혜에 보은하기 위해 열심히 보은불공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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