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 법맥의 인연지 화해, 그 아름다운 만남

▲ 화해성지길 표지석.
'발로 배우는 역사'라는 명제가 있다. 역사의 현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숨결, 그 숨결 속에 비결(秘訣)처럼 전해지는 감동과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역사의 현장에 직접 서 보고 싶어 한다.

정산종사가 스승을 찾아 헤매던 중 대종사를 만난 곳이 정읍 화해리였다. 일원 법맥의 인연지인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서는 길, 염천에 피면서도 백일동안 연이어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 꽃이 환한 등불을 밝혀주었다.

우담바라 꽃 바다여

정읍시내를 벗어나 국도 1호선을 따라가면 마봉재 산자락을 만나게 된다. 이곳 산자락 조동 마동마을이 화해리이다. 1918년 4월에 28세 소태산대종사와 19세 정산종사의 역사적 상봉이 이루어진 성지다.

"중앙위는 멀리서 올 사람이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라." 대종사는 원불교를 시방세계에 고루 펴기 위한 십인 일단의 단 제정 이후에도 중앙위 자리만은 비워 두시었다. 법맥을 바로 이을 후인을 기다림이었다.

"대종사 2박(泊)하신 객사터와 정산종사 머무시던 집터 어간의 정자나무 아래 이 비를 세우노니 그 이름 뜻 깊은 우담발화(盂曇鉢華) 꽃 바다여 그 향기 억만년 무궁화로 그윽하다." 원기71년에 세운 화해제우비의 비문 마지막 구절이다.

일찍이 김정용 원로교무는 "두 성자의 만남은 '천지공사'이다. 대종사는 물질문명이 편만한 이 시대의 주세불로 오셨고, 정산종사는 주세불을 동행한 어른이다"며 "화해제우지는 어떤 장소인가를 생각해 볼 때 미륵불이 오신 곳으로 우리가 건설한 낙원세계의 근원지가 바로 화해, 꽃 바다이다"고 설법한 바 있다.

'천지공사를 한 역사적인 땅' 화해리는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억만년 향기 그윽한 꽃 바다였다.

그 곳 꽃 바다에서 두 손 합장하는 나의 마음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일렁였다. 우담발화 꽃향기도 따라 출렁였다.

사적비가 서있는 동네 입구에서 완만한 경사를 오르기 30m 쯤에 정산종사가 머물렀던 김해운 선진의 집터가 남아 있다. 그 오른쪽으로 10m쯤에 화해교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만남이 새로운 역사를 이룬다. 신심 깊은 김해운 할머니는 나중에 대종사 문하에 귀의하고, 그 손자인 아산(김인용)·문산(정용)종사 형제를 비롯해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다 하니 복된 땅이라고 전해진다.
▲ 화해제우지비. 일원법맥의 인연지인 역사의 현장이다.
아름다운 만남, 화해성지길

정산종사 기도터를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렇다 할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기꺼이 동행해준 화해교당 한성민 원무가 아니었다면 쉽게 찾지 못할 길이다.

풀숲을 헤치며 도착한 공터에 기도터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단아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비석, 마음 한 켠이 짠해졌다.

화해성지 지킴이인 한 원무는 동행 길 내내 화해성지의 교단사적 의미와 관리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화남길을 '화해성지길'로 변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원불교 성지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길을 '화해성지길'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퇴근 후에 한 달 가까이 150여 가구를 방문해 한 집도 빠짐없이 서명을 받아냈다"는 그는 "타 종교 주민들의 집까지 방문해 도로명 변경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몇 해 전까지 제우성지인 화해교당은 '화해, 아름다운 만남'이란 주제로 영·호남 교도들이 함께하는 기념법회를 통해 화해성지에 대한 의미를 부각시켜왔다. 화해교당 최지원 교무는 정산종사 기도터를 포함해 인근 1만2천여㎡ 를 확보하고 화해성지를 복원하려는 계획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최 교무는 '역사적 의미가 살아있는 성지순례'를 강조했다. "대종사님의 신앙공동체를 체험하고 구인선진들의 혼을 체 받을 수 있는 근원성지로서의 영산성지, 교감을 가지고 교법과 교리를 체험할 수 있는 변산성지와 함께 화해성지는 입교, 법위, 봉고식 등 법연을 만나는 성스러운 체험의 성지이다"며 성지마다 차별화된 특색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만남의 소중함과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교도들에게 필연성 있게 다가가야 한다"며 화해성지의 소중한 가치를 거듭 강조하는 최 교무는 '교단적인 제도 속에 흘러드는 신앙코스'로 화해성지가 재조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취재길 내내 함께 해준 한 원무가 개인적인 바람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교무님이 퇴임 후에도 화해성지에서 저희들과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해성지의 가치와 정성을 오롯하게 체 받고 싶은 그의 마음이 읽혀졌다. 화해, 아름다운 만남이다.
▲ 정산종사 기도터를 향하는 길, 화해성지 지킴이 한성민 원무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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