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소태산대종사께서 대각을 이루시고 제자들을 모아 신심을 키우시다가 가난한 전남 영광의 궁촌벽지의 사람들에게 절약 절식으로 새 회상 교단창립의 자본을 세우자 하시고 저축조합을 실시하셨습니다.

당시는 경술국치 초기의 말 그대로 어수선한 국내외 사정으로 오늘과 내일을 점칠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정말 먹고 살기마저 어려운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상황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저축을 하자고 하셨고 사람들은 그 말을 따랐습니다.

여자들은 집에서 밥을 할 때 한술씩 아끼고, 남자들은 암울한 현재를 탓하며 좋아하는 술과 담배를 끊고 그 아낀 돈으로 저축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종사는 이 돈으로 사람들에게 방언공사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방언공사는 아주 돈 많은 권력자나, 나라에서 하는 대대적인 토목공사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종사는 그 우매한 시골 농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영원히 가난이 세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주셨습니다. 저축조합과 방언공사 등 실천으로 우리 보통사람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그대들은 새 회상 창립의 책임을 지고 나왔으므로 고생도 많겠지만 재미 또한 그만큼 클 것이오. 무슨 일이든지 남이 다 이루어 놓은 뒤에 수고 없이 지키는 것보다는, 직접 고생하면서 창립하여 선구자가 되는 것이 뜻 깊은 일이 아니겠소? 장차 우리가 함께 건설할 새 회상은 천하 만민을 두루 구할 미래 세상의 구세 종교가 될 것이오. 앞으로 교리와 제도를 제정해갈 때에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를 열어가고, 동(動)과 정(靜)이 고르게 맞아 공부와 사업을 병행해 가며, 모든 교법을 두루 활용하여 한 가족 한 집안을 만들어 서로 넘나들고 화합해 가게 할 것이오. 이러한 대도 정법회상을 건설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방언공사를 지금 하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추진하도록 합시다" 하며 방언공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대종사는 모든 것을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한편, 방언공사 때부터 시작하여 특별한 신심이 있는 9인 제자를 모아 10인 일단을 형성하시어, 모든 일은 일체중생을 공부시키기 위한 제도사업을 하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숙지시키고, 밤이면 매일 모여 마음공부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서원을 다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방언공사 완공을 앞두고 3·1 독립만세운동이 요원의 불처럼 일어나자 제자들이 동요하였습니다. "일체생령을 구원하자는 우리도 무엇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하는 질문에 대종사는 "저 만세소리는 후천개벽을 알리는 상두소리"라 하시며, "물질이 개벽되는 후천세상을 구원하려면 때가 바쁘니 어서 기도하자" 하시고, 날짜와 방위를 정하여 9인제자들에게 100일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4월26일부터 시작한 100일 기도를 마치고는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다 하시고 예로부터 옛 성현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신명을 바쳐 하늘의 인증을 받으셨나니 여러분의 정성이 부족하니 후천 구원을 위하여 기도 마지막 날 목숨을 바치기로 하고 십일을 더 기도하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0일을 기도한 원기4년 8월21일 모두 기쁘게 죽겠다는 사무여한의 종이 위에 맨손지장을 찍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법계인증의 혈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구인선진에게 죽으러 가라고 하신 뒤에 곧 다시 불러 법호와 법명을 내리시고 오늘의 이 죽을 각오로 다시 죽을 때까지 일체 생령을 위해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법인절로 정하고 이렇게 매년 경축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후천개벽의 상두소리
일체생령 구원의 기도 법계인증


법인절이 뭡니까? 우리는 원불교 초기교단에 어떤 기적이 나타난 것을 드러내고자 법인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태산대종사는 철저하게 기적과 묘수를 멀리하셨고, 기록에도 거의 남기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일은 이렇게 기념할까요?

첫째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성자들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마저 어떻게 할지 모르던 우매한 농촌 촌부들을 모아 일체 생령을 구원하는 서원으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성자들로 변화시키셨다는 점임니다.

지금 이 세상에 남을 위해서, 그것도 나와 무관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성자가 아닙니까?

바로 이날이 모든 중생이 성자가 될 수 있다는 시범을 보여 주신 날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런 성자를 만드신 뒤에 정말 죽게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목숨 바쳐 세상구원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주민들과 대동소이한 삶을 살고 있던 촌부들을 모아 일체생령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성자적 정신을 심어주고, 또한 일생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셨던 날입니다.

일순간 세상을 위해 죽기는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었다 하는 마음으로 죽기로서 세상을 위해 살기는 더 어렵습니다. 대종사는 그런 성자 혼을 살리신 뒤에 법호와 법명을 주시어 헛되이 목숨을 버리고 음계의 기적만 이루게 하신 게 아니라 그분들로 하여금 이 회상을 창립시켜, 실지로 모든 생령을 구원하게 하신 점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원불교가 교화사업을 할 때에 이와 같이 해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저 모든 이웃들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삶을 바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스스로 살아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마저 인간완성의 삶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이 원불교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초창기의 구인 선진님들처럼 저들에게 그러한 소명을 인식할 수 있고 바른 삶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성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구인 선진님들과 같은 일들을 하시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단지 여러분들께서 그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과 믿음이 있으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께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런 성자 혼을 가지고 일해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내 공부와 내 가족부터의 교화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부처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부처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죽을 때까지 우리 가족들, 친척들, 이웃들까지 모두 부처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인절 정신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는 구원될 것이며, 함께하는 가족과 이웃들이 저 시골 깡촌의 촌부들이라 하여도 성자가 되듯, 부처로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용호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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