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가능한가?

8·15 광복 68주년을 맞아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대구종교인평화회의·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가 전 통일부장관을 역임했던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을 초청해 통일토크를 열었다. 13일 경북대학교 국제통상관 국제회의관에서 진행된 통일토크에서 정 총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가능한가?'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 정세현 총장.

정전체제와 평화체제

통일문제나 남북관계를 논의할 때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지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1953년 한반도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그 당시 우리는 정전협정체결 서명 당사자가 아니었다. 19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지자 그해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모든 지휘권을 주한미군에게 맡겼다. 법적인 전쟁 지휘관이 아니고, 책임자가 아니므로 정전협정체결 현장에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을 반대했다. 이 대통령은 중공군의 참전 때문에 3·8선에서 전쟁을 끝내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정전협정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이 두고두고 화근이 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한미 동맹이 체결되고 조·소동맹, 조·중동맹이 체결됐다. 남쪽에서는 정전협정과 관련해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반대동맹이 체결되고 북쪽에서는 정전협정의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쪽으로부터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로 조·소동맹조약과 조·중동맹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정전협정을 둘러싼 복잡한 관련 국가들 간의 외교협조관계가 이른바 정전협정체제다.

평화체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난 뒤에 그 평화협정을 계속 지속시키기 위해 관련 국가들이 평화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다. 정전체제는 동맹관계를 체결해 대결 또는 대치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에 반해 평화체제는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관련 국가들 간의 외교적 협조관계라고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우리가 정전체결 당사자가 아니므로 매번 북쪽에서는 남쪽에 군사적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부각하면서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당신들과 논의할 것이 없다. 군사문제에 관해서는 미국과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고 평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정부와 무슨 군사문제를 논하겠는가'라는 주장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체결 논의를 지속해서 했지만, 남한은 거기에 낄 수가 없었다.

전시작전통제권 연기해야 하나?

노무현 정부에 와서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 4월17일 자로 찾아오기로 한미 간에 합의했다. 평시작전권은 1994년 12월1일 김영삼 정부 시절에 평시작전권을 찾아왔다. 평시작전권을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는 일종의 역사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제2의 창군의 의미가 있다.

90년대 초 미국 정부는 북한의 군사력이 매우 열세에 처해있어서 북한이 먼저 전쟁을 도발할 위험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평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다면 주한 미군의 기동성을 키우는데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평시작전통제권을 돌려준 것이다.

지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핵 문제가 복잡하므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와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논의 실체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2000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오려고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그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핵심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이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라는 것은 미·북 관계 개선, 일·북 관계 개선이다. 절반은 해체됐다. 90년에 한·소 수교, 92년 한·중수교로 북한의 군사동맹이었던 소련과 우리가 수교하고, 북한의 영원한 우방이고 강력한 후원자인 중국과도 수교했다. 그러면서 북방 삼각동맹이 깨졌다. 그에 반해 한·미동맹이나 한·일, 미·일 동맹은 견고하게 남아있었다.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 미·일동맹도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북핵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북핵문제,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방 삼각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쪽으로 가야 하고 결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은 자동으로 해결된다.

김영삼 정부가 찾아오려고 한 것은 평화협정은 차후의 문제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먼저 찾아온 뒤에 그 토대 위에서 우리가 평화협정의 떳떳한 서명 당사자의 자격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구상을 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평화협정 논의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것은 그보다 더 큰 그림인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쪽으로 논의되고 있었고, 6국이 이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합의했지만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나면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약속 불이행의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이행이 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 한반도의 프로세스는 또 과거사가 돼 버렸다. 결국, 평화체제 논의를 해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상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와야겠다는 집념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안 가도 좋다"고 까지 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으려고 했다. 미국이 이에 대해 처음에는 상당히 불쾌하게 여겼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오려고 하는 자존심 때문에 일을 시작했는데 미국이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시 미국은 부시 정부 시절이었다. 미국 정부는 북핵문제에 관해서 가장 강력한 제재만이 문제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군사적 압박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주자고 해 2012년 4월17일에 넘겨 받기로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으려고 할 때에도 북핵상황이 최고로 악화돼서 제재만이 해결책이라고 하는 논의가 국지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던 시기다.

미국은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준다고 했을까? 미국에서 볼 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가만히 놔두면 핵을 가질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북핵이 적어도 미국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일종의 공존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당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때 중국 국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소위 동아시아 내지는 서태평양지역의 군사적 패권, 국제정치적 패권을 놓고 점차 실랑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견제 전략은 이미 시작되었다. 부시 정부 때부터 노골화됐다.

그래서 과거에 미국과 전쟁을 했던 베트남과 손을 잡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인정하면서 그들과도 손을 잡았다. 중국을 포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둔 미군은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에 있는 주한미군까지도 신속히 이동시켜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국과 손잡고 있는 나라들의 군사행동을 제재하고 견제하려면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평화체제 논의가 갈 길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선 북한 비핵화, 후 평화체제 논의'를 공식입장으로 고수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시기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것을 북핵문제, 미사일문제를 핑계로 대고 연기를 주장해 관철했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미군 주둔비용을 더 많이 분담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와 함께 한·미군사훈련 때 나오는 신형 무기가 나오면 그것을 한국에서 사 달라고 요구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연장 약속을 받아냈다고 해서 한미동맹이 최고로 격상됐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실체는 바로 미국에서 파는 비싼 무기를 사달라는 것이다.

그 당시 전시작전통제권을 2015년 12월1일 찾아오는 것으로 합의했는데 지금 또 다시 연장하는 것을 논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평화협정문제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 연계시켜야

북핵 문제는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볼 때 미·북 수교와 일·북 수교를 통한 정치적 보장,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을 통한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 등 방식으로 북한 체제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평화체제 논의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북한의 핵 능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평화체제 문제 논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을 강화시켜주고, 한국은 본의 아니게 북한의 핵 위험 아래에서 살게 되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다. 안보는 지금보다 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미국으로부터 비싼 미사일 방어 장비를 들여와야만 한다.

북한을 비핵화시키고 우리가 편히 살려면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를 연계시켜 6자회담을 새로운 기능으로 운영하려 했던 오바마 정부 1기의 대북정책을 이제라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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