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폭우', 그래도 행복한 일원가족

방학을 맞아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을 챙기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대로가 치유며 힐링이 된다. 이번 기획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가활동을 통해 화합과 소통, 가족애(愛)를 다시 되새겨 본다. 1주 가족과 함께한 캠핑, 2주 가족과 함께한 등산, 3주 가족과 함께한 성지순례, 4주 가족과 함께한 주말농장 순이다.

〈201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지금까지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한 중·고등학생은 12.2%. 가출 요인으로 응답자 61.3%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 간의 갈등'이라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 밖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은 한 해 28만 명. 학교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응답자 50.9% 역시 '부모와의 갈등'이라고 대답했다.

윤철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계분석 결과 "부모와의 갈등은 청소년들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 결국 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아이들이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부모와의 원활한 소통. 이것은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절대적인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청소년기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원불교 교도 가정에서는 청소년기 자녀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을까? 방학을 맞아 자녀와 함께 걸어서 성지를 순례하는 아주 특별한 가족을 만났다. 작열하는 태양과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서 만나는 성자의 혼. 이들이 함께할 순례코스는 원기16년, 대종사와 조송광 불법연구회 회장이 경주 여행을 하며 머물렀던 대구여관 터와 첨성대를 비롯한 신라 유적지 그리고 최수운 생가와 용담정이다.
▲ 보급 차량 앞에서 소은이와 함께한 엄마 구지향 교도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도반'1, 소은이네 가족

엄마가 친구처럼 좋다고 말하는 중학교 2학년 윤소은 양. 그러나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은 싫다고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사춘기 소녀 모습 그대로다. "엄마는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훈련은 꼭 가야 한다고 말한다"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을 제일 잘 들어준다. 내가 해달라고 하는 것도 많이 해준다. 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주로 엄마와 상담 한다"며 엄마에 대한 무한 신뢰를 자랑했다. 소은이 엄마, 무등교당 구지향(42) 교도는 소통의 시작인 '경청과 공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자녀 교육의 중심을 '원불교법'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 교도는 가기 싫어하는 훈련을 억지로 권하기가 쉽지 않지만 훈련만큼은 끝까지 설득해서 보낸다고 귀띔한다. 이렇게 신심 있는 구 교도도 아이들 키우기에 바쁘기도 하고, 노는 것이 더 재밌어 한동안 교당에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공부 안 해?" 하는 소은이 물음에 "엄마도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어" 하고 답했더니, "교당 가서 공부해야지"하는 딸의 말 한마디에 교당에 열심히 나가게 됐다. "솔직히 친정어머니가 교당에 가라고 할 때에는 안 갔는데, 딸이 가라고 하니까 교당에 가게 됐다"며 딸 소은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이렇게 소은이네 가족은 부모가 자녀에게 내려주는 식의 일방적인 소통관계가 아니라 부모 자녀 상호간에 서로서로 '교법'으로 이끌어주는 관계다. 딸 소은이가 훈련에 안 가려고 하면 엄마 구 교도가 이끌어주고, 구 교도가 바쁘다는 이유로 교당에 소홀 할 때에는 딸 소은이가 엄마를 챙겨준다. 서로서로 챙겨주는 소은이와 구 교도는 이미 부모 자녀 관계를 넘어 공부하는 '법연'임을 느끼게 해준다.
▲ 용담정 앞에서 김원호 예비교무와 아버지 김도훈 교도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도반'2. 원호네 가족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불교학과 1학년에 재학중인 김원호(20) 예비교무. 원호는 대학 첫 방학을 아버지 김도훈(46·노송교당) 교도와 함께 성지 순례 길에 올랐다. 추천 교무의 권유도 있었지만 도보로 성지를 순례하면서 서원을 다지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버지 김 교도는 원기94년 친구 연원으로 입교 했다. 그동안 김 교도는 산에 가는 것이 더 좋아 법회보기를 게을리 했다. 그러나 지금은 휴가를 성지순례 하며 보낼 만큼 알뜰한 교도가 됐다. 이러한 김 교도의 변화는 아들 원호가 출가를 결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원호는 "아버지는 퇴근하면 주로 TV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는 법문 사경을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하루 세 시간 이상 법문 사경을 하실 뿐 아니라 교당 일에도 적극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신심과 공부심이 깊어진 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김 교도는 "법문 사경을 하다 보니 교무님의 설법 내용도 알게 되고, 법문이 조금씩 몸에 젖어드는 듯한 느낌이다. 법문 사경을 시작한 후부터는 생활에 균형이 잡혔고, 원불교 공부에 더 발심이 났다"며 "딸도 출가를 시키고 싶어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속내를 비쳤다.

아들에 대한 기대에 대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개척교화도 진취적으로 해나가면 좋겠다. 힘닿는 대로 후원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김 교도의 밝은 모습에서 서로서로 진급으로 이끌어 주는 행복한 교도 가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걷고 또 걷고, 그렇게 걷기를 하루에 32Km. 억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한여름 불볕더위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스팔트 길도 두려움 없이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수행이 반복의 연속이듯. 80여 년 전 대종사도 이 길을 이렇게 걸었으리라.

이들과 함께 걷는 동안 "영생을 놓고 볼 때에는 혈연보다 법연이 더 소중하나니, 공부하는 동지라야 영겁의 동지가 된다"는 정산종사의 법문이 떠올랐다. 성지 순례 길에서 만난 이들은 부모 자녀 관계를 넘어, 서로서로 도와주고 법으로 이끌어주는 혈연과 법연으로 이어진 '영겁의 동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청소년기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자녀와 함께 성지를 도보로 순례해 보는 것은 어떨까. 흘러내리는 땀방울만큼이나 성자의 큰 뜻과 진한 가족 애(愛)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고행'이라 말하는 도보 성지순례.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폭우에 온몸이 젖고, 땡볕 아래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는 고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3박 4일 걷고 또 걷는 과정에서 '묵었던 번뇌'는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룩한 성자의 혼(魂) '새로운 정신'은 조금씩 채워질 것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할 수 있어요" 자신있게 말하는 소은이의 밝은 얼굴에서 "힘들지만 참 좋아요"라고 말하는 원호의 맑은 얼굴에서 행복한 일원가족이 전하는 성지도보순례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 〈청소년(중·고등학생) 가출 경험 및 이유〉(2012).
자료: 여성가족부 〈<2012년 청소년유해환경접촉종합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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