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영 교도·하단교당(논설위원)
내가 원불교에 입교한지 몇 해 되지 않은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 계룡산에 있는 삼동원에서 대산종사의 법문을 받들 기회가 있었다.

산골 구석에 보이는 집이라고는 모두가 허름한 토담집뿐이었다. 어디에도 종법사님이 계실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저런 흙담집에서 종법사님이 계실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산 종법사님은 교단 최고 지도자가 거처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작은 흙담집에서 머물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대산 종법사님은 원불교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시며 희망에 넘치는 말씀을 하셨다. 외국의 사회 단체에서 원불교에 와서 수련을 받겠다고 요구하지만 그들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없어 승낙하지 못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원불교를 찾아와 수행을 요청할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서 수련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대산 종사님의 이러한 염원으로 우리 교단은 비교적 많은 훈련원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원불교는 평소 쉬고 있는 훈련원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많아 재정이 낭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가 올해 들어 겪은 훈련(수련, 연수)을 돌아볼 때 그렇다. 지난 겨울 한 불교 단체가 세계적인 명상 전문가인 아잔브람 스님을 초청한 수련회다. 이 수련회는 동국대 대각전과 학생 기숙사 시설을 활용했다. 동국대에서는 국제선센터를 만들어 평소에도 시민을 대상으로 수행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기상청에서 주최한 기후변화 정책과정 연수다. 부산 부경대학교 안에 있는 예식장에서 평일 예식이 없는 날은 각종 단체가 그 시설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재정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단체였지만 자체 시설이 없어도 시설을 빌려서 연수나 수련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에 견주어 보면 원불교는 교당은 물론 다수의 훈련원이 있어도 활용도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훈련원에서 여름과 겨울 1주간의 훈련에 그치고 있음은 너무 아쉽다. 교당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단 한 차례의 법회를 보고 있는 곳이 많지 않는가.

이렇게 놀고 있는 시설을 최대로 활용할 방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한 방법으로 도서관이나 학습실로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원불교에서는 군부대에 책 보내기 운동을 13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그 동안 군부대에 보낸 책으로 탑을 쌓는다고 하면 에베레스트 산을 두 번 반 정도 높이로 쌓을 수 있다고 한다. 또 돈으로 따지면 7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원불교에서 보내준 책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마음의 양식을 쌓았을 것이다.

이렇게 책을 보내주는 것만 해도 정말 장한 일이지만 원불교 교당이 이웃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공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원불교는 불상을 숭배하는 불교에서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하는 불교로 신앙의 대상을 혁신했다. 하지만 교단 현실은 원불교가 과연 법신불 일원상을 숭배하는 불교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불상을 내려놓은 자리에 동그라미를 모셔놓고 재래불교 신자들이 불상에게 절하듯이 동그라미에게 절하는 것으로 법신불 숭배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동그라미가 법신불을 상징하는 것이긴 하지만 법신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 구체적이다.

구 불교는 천불 만불 불상으로 법당을 장식하지만 새 불교인 원불교는 팔만 장경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 책으로 대각전을 장식하여 부처님과 성자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법회가 없는 시간엔 대각전을 도서관이나 학생들의 학습 공간, 또는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해서 그 활용도를 최대로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종사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학습 공간이 없어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다. 또한 문화 활동에 목말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원불교 대각전을 도서관으로 그 역할을 넓혀나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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