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성 도무·원경고등학교
(논설위원 )
하나의 결과는 무수한 인과 연의 씨줄과 날줄이 얽혀서 일어난다. 결과는 인연을 품고 있으며,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품고 있다.

최근 불거진 교육부 육영기금 손실이라는 결과도 그냥 우연하고 단순한 사고 중의 하나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소성대 정신의 약화, 재정운영의 불투명성, 감찰기능의 약화, 책임 행정의 후퇴, 비상식적인 제도 등의 인과 연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번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은 교정의 각 부면에서 지자본위의 정신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단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며 문제의 본질이다.

지자본위는 모든 차별과 장벽을 뛰어넘을 때 가능하므로 출가와 출가, 출가와 재가, 재가와 재가 사이의 소통 역시 모든 차별과 장벽을 뛰어넘는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출가와 재가의 소통과 협력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종교적 혁신이며, 대종사께서 〈조선불교혁신론〉에서 밝힌 혁신 방안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종경〉 서품 18장에는 재가와 출가는 주객의 '차별이 없이' 공부와 사업의 등위만 따를 것이고, 불제자의 계통에 있어서도 재가 출가의 '차별이 없이' 할 것을 천명하고 있으며, 출가 공부인도 처지에 따라 직업을 갖도록 하고, 결혼도 각자의 원에 맡긴다는 혁신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직업과 결혼을 처지에 따라, 각자의 원에 따라 허용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재가와 출가를 차별하지 않는 원융무애한 대종사의 경륜이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가면서 교단은 전무출신 위주로 교정을 재편하였고, 거진출진은 상대적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면서, 출가와 재가의 관계가 대등하고 공평한 관계를 이루는데 실패했다.

출가 위주 교단은 한 때 교단의 성장을 견인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으나, 도리어 협소한 인적 인프라로 인해 역동성과 창의성이 약화되고, 다양성을 살리지 못해 비민주적으로 교단이 운영되었으며, 안목과 경험이 부족하여도 이를 보완할 재가 전문가들의 교정 참여는 미미했다. 출가 재가가 갑을의 관계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것은, 그 표현이 다소 지나치다 하여도 이러한 교단 운영의 부작용을 아프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종사의 경륜이 지금처럼 방치되어선 안 된다. 진실로 개교 100주년은 재가 출가가 함께 교정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균등사회의 열망을 담은 지자본위 정신을 우리 교단이 가장 선도적으로 수행한다면,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에 머무르지 않고 대종사의 교법정신으로 돌아가는 엄숙한 과업이 될 것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감찰원을 독립시켜 재가가 운영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정부원장을 재가 전문가가 맡아 재정 운영을 더욱 합리화하자는 제안도 있다.

나아가 덕망과 법력을 갖춘 재가 출신 전문가가 교정원장이 되는 길도 열어서, 재가 출가가 정신적인 지도자와 행정적인 지도자로 교단을 함께 이끌어간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지자본위의 정신을 만방에 구현하고, 전 교도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 모두의 광범위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교헌 개정과 제도 개선이 따라야 하며, 출가 재가의 관계 재정립도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방안이 출가와 재가의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논의되어선 결코 아니 되며, 전무출신과 거진출진의 소통과 협력이라는 대의와 교단 혁신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과제들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사요 중 지자본위에 '사람을 근본적으로 차별 있게 할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하는 때에 있어서 하자'는 말씀이 있다. 온전히 교정을 열어서 오직, 구하는 때에 맞추어 차별 없는 교정 참여를 이루는 것이 대종사의 근본정신이며, 이것이 재가 출신 교정원장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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