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이어온 여행, 추억의 나이테
하루를 시로 정리
기록과 수집으로 살아온 삶

▲ 그의 방은 교수연구실 분위기가 난다.

많은 사람들은 바쁘게 달려온 인생 1막을 마감하며 인생의 2막을 구상한다. 35년 여의 시간을 교육자로 재직한 이 남자는 인생 2막을 열며 다방면에 걸쳐 정열을 불태우고 있으니 놀랍다.

생명자연과학대학 환경과학부에서 2009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길러온 이갑상(70) 전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자연과학분야의 교수로 흔치 않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다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전공서적 30여 권, 시집 34권, 회화, 서예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한국시 신인상, 백양촌문학상 등 수상 경력도 빠지지 않는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교수 연구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시간의 습관 때문인 듯하다. 창문을 제외한 벽면에 세워진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은 방안에 묵직한 분위기를 흐르게 했다. 이 교수는 그 안에서 한 손에 커터칼을 들고 신문을 잘라냈다. 스토리텔링 보드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한번보기 아까운 사진, 그림들을 수집하며 시작했다. 이후에는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서 작업했다. 책만 보는 아들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편지봉투에 넣어 한 달에 200여장 정도 보냈던 것 같다"며 "지금도 하루 7~8개의 신문을 본다. 그림과 글씨로 짤막하게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주변 사람들도 재미있다고 한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그동안 제작한 스토리보드들과 신문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3~6조각으로 이뤄진 스토리보드는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글을 적극적으로 쓰게 된 것은 1976년 원광대학교 전임강사로 발령된 이후이다. 이 시기 고 박항식 교수를 만나게 되며 시의 세계에 들어왔다"며 "집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쓴 것도 우연이었다. 발령은 됐지만 변변찮은 교재가 없어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니 교재가 없었다. 대단한 목표를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로인해 그의 집필 욕심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작 작가인 그에게 시는 늘 삶 속에 녹아 있다. 하루를 살며 마치 일기를 쓰듯이 시로 인생을 기록한다. 하루의 기분, 느낌, 고뇌 등이 생생히 그의 시에 담겨 있다. 1년 365일 하루에 한편 씩 써온 게 올해 34년째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삶을 확인하는 것이다. 첫 시집을 내며 '나의 하루가 시가 돼야 한다'고 다짐했다. 시로써 과거를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내 삶에 축적된 자산이다. 70년을 이어온 여행 가운데 추억의 나이테로 형성된 시간의 무게가 느낀다"며 "나의 좌우명 중 하나가 '통섭'이다. 자연과학을 하며 인문학을 통해 정신적인 순화나 마음의 양식을 얻으며, 전인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그 방편이 시이다. 매일 시를 쓰는 것은 딱딱함 속에서 부드러움을 찾는 것이다"고 계기를 전했다.

올해 칠순을 맞으며,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점을 찍은 그는 300여 페이지 분량의 회고집을 출간 해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70년을 이어온 여행 추억의 나이테 70〉이라는 제목의 책에는 삶과 인생 스토리로 가득했다.
▲ 칠순을 맞이해 출판한 회고집.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학업으로 인해 집을 일찍 떠나게 됐다. 덕분에 학창시절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 생활을 할 때 이를 깨닫고 매우 안타까웠다"며 "이후 40여 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기록과 수집은 생활이었다. 쉽게 버리지 않는 습관이 있다. 아마도 아버지가 60여 년 동안 일기를 쓰셨던 모습을 봐와서 그런지 모른다.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로인해 정신적인 유산이 큰 것 같다"고 회고 했다.

그의 수집에 대한 열정은 삶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우표, 사진 등 다양한 분야다. 그 중 교수 재직 시절 모아온 학생들의 사진을 모아 앨범을 만들어 놨다.

그는 "내 강의의 첫 레포트는 자신의 증명사진 제출이다. 처음 강사생활을 시작한 강원대학교 재직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의 얼굴을 외우기도 좋다"며 "학생들은 아마 자신이 이런 모습의 사진이 남아있는지도 모를 것이다"고 말했다.

10여 권의 앨범 속에는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흑백사진부터 퇴임 직전인 2009년까지 40여 년의 세월을 오갔다.

오랫만에 꺼내 본 앨범을 들추던 그의 눈은 추억을 되짚는 모습이다. 연륜이 묻어 있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회상될 것이다. 그의 앨범 속의 학생들은 이제 도처에서 자신의 본분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올해 퇴임한지 5년 째이다. 퇴임을 하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내 일을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책 읽고 싶으면 읽고, 쓰고 싶으면 쓰고, 운동하고 싶으면 하고, 사는 맛이 좋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죽는 날까지 이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건강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20여 년간 해온 탁구가 한몫 한다"고 말했다.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이렇게 하기까지 가족이 있어 가능하다는 속내를 내 비쳤다. 가정은 또 하나의 소중한 쉼터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보다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마음의 기둥이다. 꼭 남기고 싶었던 순간은 부인과 자식들하고 함께 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고, 남기고 싶다. 가정이 안정되니 생활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