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뿐함을 느끼며 눈을 뜬다.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최후의 일념이 최초의 일념이라 했던가.
일요 예회에 참예하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하루 일정을 살펴보고 계획하며 마음을 챙긴다.
몸을 단정히 한 다음 준비물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교당으로 향한다.

이웃해 살고 있는 교도 한 분, 그리고 가는 길에 다른 교도 한 분, 이렇게 네 도반이 동승해 교당에 간다. 합창 연습을 하고 법회를 본 다음 교도들과 함께 즐겁게 점심을 마치면 집에 돌아온다.

설교 내용과 교당에서 의심이 났던 점을 되새겨보고 교전 등을 통해 해오를 얻어간다. 교당 회보와 〈원불교신문〉 및 유인물을 살펴보며 공부도 하고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다보면 얼추 오후가 다 간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교전을 봉독하거나 신앙관련 서적을 읽기도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것이 보편적인 일요일 내 일과다.

매주 화요일에는 교도들과 탁구하고 수요일에는 수요법회, 월(月) 또는 분기 및 연례적으로 갖는 의식과 행사, 올해 같으면 마음학교 수강에(주 1회이지만)10주 등이 더해지면 상당한 시간이 교당생활과 연관되어 쓰여 진다.

예전에 교도부회장 및 교화협의회의장 그리고 교구 교의회부의장 직을 맡았을 때에는 각종 회의와 행사 및 모임으로 더 그랬다.

작년부터는 예기치 않게 원불교전북문인회장 직을 맡았는데 역량이 부족해 모임에 활기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무언가는 해야 하고, 교도로서 신앙적인 문학 소양을 쌓는데도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과연 나는 어느 정도나 종교생활에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가.

하루 24시간에서 잠자는데 7시간, 식사하는데 3시간, 휴식에 2시간을 빼고 나면 활동하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직장생활에는 다소의 여유가 있으니 5시간가량 소요된다고 보고 운동과 각종 모임 등 사회활동을 하는데 3시간을 쓴다면 나머지는 4시간 정도다. 그중에서 나는 신앙하는데 몇 시간이나 공들이고 있을까?

입교 초기 겨우 일요일 예회만 볼 때에 비하면 많이 늘었으나 아직도 부족한 듯하다. 의미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는데, 나를 키우는 나의 신앙생활 비율은 몇 할이나 될까.

이를 숫자로 헤아려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실제의 질이라 할 수 있는 수행지수가 문제리라.

본래의 참 마음을 찾아 닦고 지키며 실생활에서 활용해야하는 것을. 기질 변화, 교법의 체질화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불법 시 생활(佛法是生活), 생활 시 불법(生活是佛法)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불법과 생활이 융화되어야겠지.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거나 기차가 철로를 이탈해서는 갈 수가 없다. 비행기가 다니는 텅 비어있는 것 같은 공중에도 항로가 별도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를 따라 비행하는 것은 불과 5%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5% 정도는 기상이나 기압 같은 장애 때문에 아니면 자연스럽게 항로를 벗어나있다고 한다.

그래도 예정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는 항로를 비켜가거나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목표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서원을 굳게 세우고 원불호(圓佛號)를 성류(聖流)에 띄워 운전해간다면 다소의 완급은 있을지언정 그 뜻을 이루리라. 일단, 신심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교단생활에 충실하다보면 점진적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둥근 기운으로 채워지리라. 나는 오늘도 즐거이 교당으로 향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