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고 보니 봉사는 그냥 천성
우연히 시작한 국악
경기민요 전수자 오복식 씨

▲ 행복나눔인 시상식에서 오복식 씨가 축하공연으로 창부타령을 부르고 있다.
(사)나눔국민운동본부의 주관으로 2013 제3회 행복나눔人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세종호텔을 찾았다. 시상식장은 이미 300여 명의 시상자와 지인들로 가득했다. 시상식 한쪽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오복식(61) 씨가 보였다. 눈빛으로 보내는 짧은 인사는 밝은 미소도 함께 전해졌다. 그는 '재능나눔·자원봉사'부문으로 '행복나눔인(人)'에 선정돼 수상을 했다.

이날 시상식은 사회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발굴·포상해, 미담사례를 널리 알려 나눔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 를 조성하고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한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시상 순서가 돌아왔다. 연단 위로 올라가자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이 상패를 건넸다. 그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의 기억들이 회상되는 듯했다.

그와 함께 시상을 받는 이들은 '가수 씨엔블루', '가톨릭 국제봉사단', (주)CJ CGV 등으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단체들이다.

그는 "오늘 수상은 참 감회가 새롭다.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했지만, 같이 수상하지 못해 아쉽다. 올해 남편은 칠순이고, 나는 환갑을 맞았다. 뜻 깊은 일이 많은 해인 것 같다"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봉사는 그냥 천성인 것 같다. 유복한 삶을 살지 못한 유년기를 지나, 결혼 후에도 경제 상황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임신 후에도 똥지게를 질 정도였다. 그 때문에 어려운 이들을 보면 더욱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계기를 전했다.

그는 달동네인 신림동 밤골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도 '오복식 자원'이다.

그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15년 정도 된 것 같다. 이미 철거 예정지지만, 아직도 80~90대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대부분 독거노인들이다"며 "우리 고물상은 동네 사랑방이다. 주위에서 폐지와 고물을 줍는 노인들이 오가다보니 그리된 것 같다. 그분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먹고 싶어 매번 점심에는 10인분 이상을 준비한다"고 밝게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배가 고팠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밥이 아닌 정(情)이었다. '정(情)'을 나누는 방법도 다양했다. 경기민요 전수자인 그는 소리 봉사도 하고 있다.

국악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그는 "30대 후반 쯤이었던 것 같다. 길을 걷다 노인대학에서 흘러나오는 장구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적이 있다. 너무 흥에 겨워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두 달만 배우겠다고 허락을 받았다"며 "당시 교육비도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어떤 결심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해 벌써 20년 넘게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악을 하며 알게 된 현군자 선생님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8호 재담소리 보유자이신 백영춘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셨다. 이후 본격적인 소리꾼 인생이 시작됐다"며 "경기민요를 부를 때면 혼신이 목소리에 쏠린다. 그때 소리에 대한 호소력도 생기고 황홀 해진다. 마음이 애절해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동을 전했다.

2009년 제12회 전국 경서도 소리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을 수상 하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한 그는 "처음 시립요양원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 어깨를 들썩이시며 즐거워하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벌써 20년 정도 된 것 같다"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봉사를 하고 싶었다. 요즘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양로원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을 다니며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까지도 못했을 것이다"고 남편을 바라봤다.

그에게 있어 재능 기부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재능을 100%로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외로운 노인들에게 '신명'을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리 없는 후원자인 남편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 행복나눔인 상을 수상한 오복식(중앙)씨와 가족들. 좌측에는 그의 남편 박기천씨.

박기천 씨는 "본인이 봉사활동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다. 소리까지 배우더니 더욱 활발해 졌다. 한번 다닐 때마다 항상 도와줘야 한다. 장구며 장비들이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며 "생계 때문이라도 고물상 운영을 해야하지만, 솔직히 나도 좋으니 따라다닌 것 아니겠는가?"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부가 한 마음으로 천성이 봉사였다. 여유로운 삶을 살지는 않더라도, 마음만은 부자였다.
그는 'SBS스페셜', 'KBS인간극장', 'KBS아침마당' 등 많은 매체를 통해 나눔 실천이 소개됐다.

그는 따뜻한 밥 한끼의 나눔으로 노인들의 상처를 치유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배고픔과 가난에 한평생 시달렸던 자신의 상처와 아픔도 함께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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