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도와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의뢰인의 '자발적 동의'를 받아 목숨을 끊어주고, 그들의 장기를 빼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제공합니다. 수술에 참여한 사람들과 회사는 그 과정에서 돈을 법니다. 자살의 뜻을 이룬 사람도,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도, 이를 도와준 회사도 모두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를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과 재벌이 서로 돈과 특혜를 주고 받을 때 이를 "자리이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동포은의 핵심으로 자리이타의 도를 알려주십니다. 무조건적 이타행이 아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도입니다.

얼마전 개천절을 지내며 우리 민족정신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새겨 보았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은 좋지만 무조건적 희생은 일반적 생각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데, 원불교의 자리이타 정신은 너도 이롭고 나도 이로우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확실한 거래의 원칙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앞의 예처럼 두 가지 상황을 자리이타라고 하기에는 뭔가 불편함이 있습니다.
자살은 소중한 생명을 끊는 것이니 옳지 않고, 정치와 재벌의 결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를 하라고 하십니다.
공평하고 올바른 자리는 한편의 욕심을 키우거나 중도를 잡지 못하면 이미 어그러집니다.

직권남용, 월권행위, 부정부패, 무사안일 등 그 마음에 진심(眞心)이 없고, 원근친소에 따라 차별이 있고, 이해득실에 따라 본분을 망각하고 사리를 취하면 이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자리이타는 천지가 스스로 마땅히 떳떳한 도를 행하는 가운데 은혜가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동포들이 각자의 직업과 역할에 충실한 가운데 서로 도움이 되고 은혜가 된 것입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깊게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으신 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이익은 무엇이며 해로움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나 공정한가? 과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내가 양보할 수 있는가? 정신·육신·물질로 얼마나 세상에 유익을 주는가?

스승님들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공정하게 하는 방법으로 인도의 대의와 사은의 윤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심(眞心)과 공익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원근친소나 희로애락에 끌리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모두가 하나이니 결국 남을 위하는 것이 참 나를 위하는 것이며, 작은 이익과 욕심에 국한되지 않고 가장 큰 서원을 키우고 영원한 복락을 구하라 하십니다.

자리이타의 도는 서로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거래가 아니라, 은혜를 주고 받는 보은 즉 불공이며, 이상세계의 이념이며, 결국 영원한 세상에 참된 이익의 표준이 됩니다.

<삼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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