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야간 법회 시간에는 주로 교리 강좌를 했다. 그런데 정신수양 공부를 하던 중 하루는 좌선을 하자고 했다. 소등을 한 다음 각자 앞에 놓인 초에 불을 밝히고 좌선에 들었다. 나는 자세를 잡고 촛불을 응시하며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모았다. 깊어질수록 촛불은 아련히 빛살이 되어 둥근 원을 그려갔다. 그 빛살이 선연해지면서 내게로 쏟아지는가 싶더니 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와 빛이 하나가 되어 무지개를 이뤘다.

어느 새인가 단전은 의식하지도 못했다. 30분 쯤 지나 좌선을 마치고, 감정에 들어갔다. 나는 그 의식의 흐름을 진솔하게 전하고 비록 단전은 놓쳤지만 망념 없이 일심은 되었으니 제대로 한 것인지 여쭸다.

좌선은 망념을 제거하고 진여의 본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마음이 촛불의 움직임에 끌려감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지적하고 좌선을 하는 가운데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함을 경계해 주셨다.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그 자리를 알아 그 느낌을 간직할 수 있어야 그 자리를 쉽게 빨리 찾아갈 수 있으니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마음을 알고 활용하는 긴요한 공부가 좌선이니 이에 정진하라고 했다. 나는 공부나 적공이 부족하여 법력이 얕다. 특히 새벽 좌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무님이 몇 차례 정시 좌선을 독려했다. 정시 선이 되어야 행·주·좌·와·어·묵·동·정 간 선도 빠르게 된다며 좌선이 없는 수행은 공허하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실행을 못하고 있다.

월초·보은 기도나 훈련 때라든지 기회가 되면 가끔 시도해볼 뿐이다. 유무념 공부 과제로 하는 1분 선(1분 기도) 그리고 법회와 기도 또는 의식이 있을 때에 입정하는 것으로 어리석은 위안을 삼고는 했다. 거필택린(居必擇隣)이니 백만매택(百萬買宅)이나 천만매린(千萬買隣)이란 중국 고사가 있다고 한다. 이웃이 좋아야한다며 덕성 있는 현자와 인접한 집에서 살기 위해 백만원짜리 집을 천만원에 샀다는 것이다. 집값의 아홉 배는 그 현자의 인품을 흠모해 치룬 값이다. 나는 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원불교라는 정법의 품에 안겼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화향백리(花香百里)고 주향천리(酒香千里)며 인향만리(人香萬里)요, 또한 난향백리(蘭香百里)고 묵향천리(墨香千里)며 덕향만리(德香萬里)라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의 기운이 제일 널리 미치며 덕성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의미리라. 경산 종법사께서 염원하신 '도미덕풍'이 더 새롭다. 나는 어떠한 향을 지녀 풍기고 있을까. 꽃 향내는 고사하고 악취나 아니었으면 한다. 어울리지 않게 빚을 내어 화장은 제대로 했다. 법명이 덕권(德權)이요 법호가 성산(性山)이니 말이다. 덕과 성, 너무 과분하다. 그러나 화장은 가면이니 향기가 날 리 없다.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아 성품을 제대로 갖추어야 도의 맛을 알고 덕풍도 불릴 텐데… 그 진 빚을 언제나 갚을지. 엘레나 루즈벨트는 '아름다운 젊은 사람이란 자연의 우발적 산물이지만 아름다운 노인이란 자기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다'고 했다.

젊지도 잘 생기지도 못한 내가 아름답고 행복해지려면 꾸준히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법에 안겨 화장은 그럴싸하게 했는데, 행복한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있다.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웃는다고 정말 행복할까? 생체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아니라고 본다. 지금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에 억지로 웃으면서 행복한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빚진 마음, 어찌 안주할 수 있겠는가. 부지런히 공부에 정진하고 적공하여 그 빚을 갚아야만 진정 행복해지리라. 참으로 행복하여 웃고 싶다. 그 웃음에서는 어떠한 향기가 풍겨 나올까?

다음 호부터 대전충남교구 유성교당 석희진 교도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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