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상 원불교의 경전인 '7대교서(敎書)'를 완간하는데 실무를 전담했던 범산 이공전 종사가 열반했다. 범산종사는 우리 회상의 법모(法母)요 제법주(制法主)인 정산 송규 여래의 분화신으로 정산종사가 경전편찬 업무를 총괄하는데 지근거리에서 보필했었다. 정산종사가 〈대종경〉 〈예전〉 〈교사〉 등 주요교서를 편수할 때마다 범산종사는 교서편수기관인'정화사(正化社)'의 사무장으로서 실무책임을 맡아 정금미옥의 법보경전을 완성하는데 일등공훈을 세운만큼 교단역사를 통해 길이 남을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다.

13세에 새 주세불인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의 법하에 귀의하여 젊은시절 많은 독서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타고난 천품의 문장력으로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던 범산종사.

그의 뛰어난 시문은 〈원불교성가〉 가사의 최다작사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성지찬가(성가 3장), 정산종사 찬송가(성가 13장), 수덕회가(성가 25장), 교무송(성가 29장), 대각경축가(성가 35장), 법인절 노래(성가 38장), 득도의 노래(성가 48장), 정신수양가(성가 64장), 정신개벽가(성가 72장), 삼동윤리가(성가 75장), 선진후진경애가(성가 103장), 해외포교환송가(성가 124장)를 비롯 칠십여편에 달하는 성가 가사의 작사는 실로 불가사의하고 독보적인 일가의 경지이다.

정산종사의 전문시자로 정산종사 종법사 재위 19년동안 보필의 도를 다한 일등제자요 효심깊은 제자였다. 특히 정산종사가 열반하기까지 9년동안 병상에 계실 때 시자 범산이 남긴 시봉일기는 정산종사의 언행과 경륜을 후인들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 그리도 역사의식이 투철하여 교단의 대표이자 스승인 정산종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일기로 남겨놓을 수 있었는지 실로 감사하고 감동할 뿐이다.

또한 대종사와 정산종사, 대산종사 등 역대종법사에 대한 효성이 하늘에 닿아 세분 여래불의 성적지를 기념하는 기념비석을 중앙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성지마다 세웠으니, 변산성지 일원대도비, 성주성지 소성구도지비, 만덕산 초선지비, 정읍 화해제우지비, 고창 연화삼매지비 등으로 비에 새겨진 비문 역시 가히 명문이다.

이후 좌산종법사와 경산종법사를 받드는 데에도 젊은 후배들임에도 불구하고 종통으로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존중함으로써 가히 법가지(法可止)의 모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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