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타원이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개금실 동네 앞 방죽.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琴坪里)는 지형이 가야금처럼 생겼대서 개금실이란 동명이 붙었다. 전주 최씨 순화는 개금실에 숨어 산다고 하여 자호를 금은당(琴隱堂)이라고 하였다. 근동에서 알아주는 탄탄한 가세에 소실을 둘이나 두고 10남매를 두었으며 거기에다 효행이 근동에 널리 알려져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금은당은 일곱 딸 중에 여섯째 인경을 유난히 사랑하였다. 인경(仁京)은 둘째 소실 진씨의 소생이었다. 인경은 어른의 기미를 알아 보비위하는데 남다른 붙임성이 있었다.

인경이 일곱 살 때 금은당은 마흔 셋의 나이로 죽었다. 진씨는 귀한 아들 하나를 두었으므로 머슴을 부릴 정도로 상당한 토지를 물러받았다. 머슴 조씨가 충직하여 10년을 넘게 농사일이며 집안 대소사를 그에게 맡기고 살았다. 아들이 요절한 뒤로 진씨는 인경과 보경 두 딸에 낙을 붙이고 살았다.

인경은 꿈이 커 〈소대성전(蘇大成傳)〉이라는 고대소설을 읽은 뒤로는 집을 떠나 청룡사 노승 같은 도인을 만나 상당한 술법을 배워 가슴에 품은 뜻을 이루기가 소원이었다. 주인공 소대성은 조실부모하여 품팔이와 걸식으로 연명한다. 청주에 사는 이 승상이 기이한 꿈을 꾸고, 월영산에서 인물됨이 비범한 소대성을 발견하여 데려와 딸 채봉과 약혼시킨다. 부인과 세 아들은 소대성의 신분이 미천함을 들어 혼인을 반대하다가, 이 승상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대성을 박해하고 자객을 시켜 죽이려 한다. 대성은 달아나 영보산 청룡사로 피해 노승에게 병법과 무술을 공부한다. 청룡사에서 공부한 지 5년이 되는 해, 대성은 천문을 보고 오랑캐가 중원을 침공하는 것을 알고 노승에게서 보검을 받고, 또 이 승지의 몽중계시대로 갑주를 얻고, 용마를 타고 출격하여 적군을 격파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 황제를 구한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소대성을 대원수로 임명하고 노국 왕에 봉한다. 소대성은 청주에 가서 채봉을 맞아 인연을 성취하고, 노국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다.
▲ 고대소설 〈소대성전〉. 최인경(三陀圓)은 이 소설을 읽고 가출하여 법술을 배울 각오를 다졌다.

야무지고 당찬 인경은 주변머리가 좋은데다 이재에 밝아 개금실에 찾아오는 방물장수, 황아장수, 비단장수는 으레 진씨 집에 먼저 들렀다. 이들을 상대하는 이는 열두어 살 큰애기 인경이었다.

"인경 아씨는 하루가 다르게 이뻐요이."
"아씨 이름이 인경인게 아무래도 서울로 시집갈랑게벼."

장사꾼들은 서출인 큰애기를 아씨라 받들었다. 인경은 먼저 허기진 그들의 배를 채워줄 줄 알았으며 물건 흥정하는데도 요령이 좋았다. 물건 시세 속내는 인경이 더 잘 파악하였다.

"귀신은 속여도 아씨는 못 속인당께."

오일장마당 곡물 시세며 물가를 훤히 끼고 앉아 봇짐장수가 올 때마다 동네 아낙들은 인경이네 집으로 몰려들었다. 봇짐장수를 통하여 각지의 연락이나 도매집에 미리 주문을 시켰다. 인경은 소소한 물건은 봇짐장수들에게 구해도 큰 물건이나 다량으로 구입할 때는 머슴 조씨를 시켜 전주 도매점에서 주문해왔다. 근동 사람들이 갑자기 물건이 필요할 때는 인경이네 집에 왔다.

소녀의 꿈은 열세 살 때 무참히도 좌절되었다. 진씨는 두 딸 중에 대가 차고 주변성 있는 영악한 인경에게 가사를 맡길 생각이었다. 진씨는 집안에서 부리고 있는 착실한 머슴 조씨를 데릴사위로 맞아들였다. 열여섯 살이나 나이 차가 졌다.

인경이 꿈꾸는 신랑은 매사에 수완이 좋은 아버지 같은 어른이거나 소대성 같은 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른이 시키는 대로 남의 밑에서 꾸벅꾸벅 일 잘하는 머슴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인경은 밤을 싫어하였다. 초저녁에는 두 손으로 밀어붙이기와 발차기가 주무기였다. 열세 살 아씨가 어디서 그런 힘이 있는지, 만만케 알고 달려들었던 신랑 조씨는 혀를 내두르며 바람벽에 기대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인경이 새벽에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면 구리구리한 입내를 풍기며 조씨가 배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아들딸 남매가 생겼고 그 외손들을 진씨가 극진히 거두었다. 결혼 뒤로 인경은 팩팩 성질을 잘 내고 겉과 속이 다른 극단적인 모가 진 성미로 변했다. 스물여덟의 나이가 되도록까지 도무지 가정 살림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였다. "나 이렇게 못살아!"가 입버릇이었다.

이러던 중 방물장수가 귀가 번쩍 티는 소식을 가져왔다. 전주 관음묘에 법술을 잘 부리는 도사가 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이제 때는 왔다 싶어 희색이 만면하여 인경은 전주로 갈 채비를 하였다.

"저기 효남이 아배요, 나가 전주에 좀 다녀올텡게 그리 아시요이."
"먼 소리여? 나가 갖다올텡게. 말을 혀봐."
"나가 가야 한당게요."
"전주 질도 모르면서 워쩔려고 그러는겨. 부녀자가 함부로 나댕기다가 큰일난당게. 또 아그들은 워쩔 쳄이여?"
"엄니한테 보라믄 되지 머."

진씨도 이 말을 듣고 "부녀자가 어디 혼자 출행을 한다 말이냐" 한발 더 나서 반대였다. 날짜가 당도하여 인경이 나들이 채비를 하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든지 진씨가 방문 앞뒤에 철문을 하였다. 방안에서 난리 법석을 떨어도 들은 체 만 체였다. 저녁이 되자 문이 열리고 밥상이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못 살어!" 머리를 산발하고 충혈된 인경이 토방에 밥상을 내리 엎으며 맨발로 마당에 뛰어나갔다. 식구들이 뒤따라 나갔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이 사람이 어디 갔당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유."
"전주로 나간 게 틀림이 없네. 조 서방, 어여 그쪽으로 가게."

동네 옆으로 난 지름길을 하여 조 서방이 잽싸게 달려나갔다.

종일 방안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인경은 동네 앞 방죽으로 달려가 치마를 덮어썼다. 이렇게 살밖에 죽는 게 났단 생각이 들었다.
▲ 금평리 개금실 삼타원이 살았던 집터. 원기8년 여름 옥녀봉 아래 구간도실을 돛드레미 뒷산(현 영산원)으로 옮기게 되자 주거가 없어진 대종사 사가(대사모댁)가 이곳으로 옮겨 원기8,9년에 임시 거주하게 된다.
나이 마흔 중반의 신중 하나가 개금실로 난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날이 더 어둡기 전에 마을에 들어가야 좀 실례를 덜 끼치며 하루 밤 유할 것이란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몇 번 시주를 받아 본 일이 있는 젊은 부인의 얼굴이 떠올라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오다 그녀는 풍덩 하고 무엇이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녀는 머리가 섬뜩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맨머리를 쓰다듬으며 땀이 밴 손바닥을 승복에 닦았다. 못둑에 올라서기까지 그녀는 웬지 모를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걸음이 이다지도 무겁고도 더딘지 속이 다 답답하였다.
▲ 박용덕 교무/군북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