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심 신맥'본받아

▲ 박법종 교무/좌포교당
나는 중학교 때부터 원불교가 좋아 열심히 교당을 다녔다. 그것이 출가로 이어졌다.
출가를 해서 수행에 욕속심이 많았던 까닭에 법에 집착하여 외우고 생각하는 마음이 지나쳐 머리 병이 나 여러 해 고생을 했다.

대산종사는 나의 지나침을 알으시고 중앙총부 송대의 큰 소나무를 가르키며 "저 소나무는 몇 해나 컸냐?"하고 물으셨다. 삼동원에서 함께 산책하는 가운데에 잡은 손을 흔들면서 "너무 급히 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예비교무시절 나는 여름방학이면 어머니가 준 식비와 여비를 받아 챙긴 다음 책과 이불, 방석을 싸서 곧장 대산종사가 계신 신도안으로 갔다. 신도안에는 대산종사께서 방학기간 동안 항상 기거하셨다. 그곳에서 나는 법문을 듣고 공부하는 재미로 온통 방학을 보냈다. 그렇게 하기를 훈련교무 때까지 했다.

당시 동산 이병은 종사 등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고경공부와 법문공부를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방학 때 기거하는 학생과 선객들에 대한 대산종사의 배려였다. 아침 좌선 후 선요가와 선보(행선) 때 대산종사께서 꼭 나오셨다. 나오셔서 모든 사람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셨다.

그때만 해도 교단이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므로 대산종사가 매일 교도들을 응접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자연스럽게 보며 지냈다.

대산종사법문을 정리하며 많은 법문 기록을 읽었다. 많은 법문을 접하면서 대산종사의 깊은 가르침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법문 가운데 '혈심과 신맥' 등을 본받게 됐다.

항상 소박하시고 친근하신 모습 속에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법우(法雨)에 목욕했고, 폭넓은 교리의 세계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한 번은 적은 수의 식구와 함께 동용추로 향했다. 산에 올라 말씀하시기를 "남이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해 보면 되는 것이다. 남의 가는 길을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꼭 나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또 한번은 대산종사께서 지팡이로 탑 앞에 서있는 검은 돌을 가리키며 나에게 "저 돌은 왜 검냐?"고 물으셨다. 나에게 의두(?)를 던져 주시는 것 같았다.

삼동원 식구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오자 대산종사는 밖에서 맞이하면서 "산에 갔다 오면서 뭘 보았느냐?"고 했다. 대중들이 대답을 하자 "그것 말고"라고 하시면서 대답이 못마땅한듯 "개 바위 지나듯이 다녀왔구먼"이라고 하셨다.

까닭 있는 삶을 살도록 하셨던 것이다. 스승의 훈증을 받으며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시대적인 홍복이라 할 수 있다.

대산종사께서 수양 법문 중에 "너는 살얼음 수양력이다"고 비유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에는 공부심은 많았지만 나의 안목이 크게 열리지 못하고 올곧은 믿음과 수행에 한계가 많았던 것 같다.

대산종사의 크신 경륜과 세계가 점차 이해가 되고 크신 성자임을 깨닫게 됐다.

대산종사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나는 대산 종사 탄생지인 좌포로 발령을 받았다. 대산종사 성업의 일에 선택된 사람이며, 이러한 사명을 지워 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기도 후에 대산종사의 기원문 결어·염불십송·여섯가지 질문을 함께 독송을 하며 이 대산종사의 가르침에 함께 하고자 한다. 대산종사 생장지인 성지불사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여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스승께 참다운 보은자가 되도록 열심히 까닭 있게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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