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연화봉에서 삼동에 정진하다

▲ 연화봉초당터 입구 표지석.
"소유를 향한 갈망은 또 다른 갈망을 낳을 뿐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해답이 없었다. 여전히 한 맺힌 중생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가 무어라 해도 낡아빠진 이 길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참되고 바른 길을 찾아 떠나야했다." 구도의 길을 떠나는 어떤 이는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태산대종사 마지막 정진의 땅, 전북 고창군 심원. 이곳 연화리 연화봉 중턱에 연화삼매지가 있다. 이곳을 '연화초당'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대종사가 대각 하기 1년 전, 이곳 초당에서 한 겨울 3개월간 마지막 정진을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대종사의 간절한 구도일념을 마음에 담고 고창으로 향했다.

'연화삼매지'나 '연화초당'으로는 내비게이션 검색이 되지 않았다. 지번으로 '연화리 산77의 2'를 입력하고 국도 길을 택했다. 직선의 고속길이 아닌, 다소 에돌아가는 구불한 국도는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는 황금들판과도, 코 끝 찡한 솔바람과도 만날 수 있으리라.

'소태산대종사는 초당에서 한번 자리에 앉으면 며칠을 그대로였다. 구태여 밥을 먹는 일, 잠을 자는 일, 옷 갈아입는 일 없이 줄곧 입정이 계속됐다.' 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의 생애 60가지이야기〉에는 '정진동연화(精進冬蓮花)가 소개돼 있다. '이불은 커녕 차가운 냉방에 앉아서 정진하다 혹 잠이 오면 골짜기에 내려가 옹달샘에서 물을 몇 동이씩 몸에 끼얹어 정신을 차렸다.' 대종사가 '며칠을 그대로' 입정(入定)삼매에 들었던 초막. 그 터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설랬다. 연화리에 도착해 좁은 시골 마을길을 조심스레 들어섰다.

연화저수지에서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연화저수지까지는 지번을 따라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자 길 가 한쪽에 '원불교성적지 연화봉초당터'를 알리는 이정석이 세워져있었다. 화살표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곱게 물든 키 작은 단풍나무.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초당터가 있는 산 중턱까지 오르는 길,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꽤나 가파르고 넓은 오르막 길은 초당터에 닿을 때까지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손길로 잘 관리되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 옹달샘 연화정.

옹달샘 연화정에서 잠깐 발길을 멈췄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한번 목을 축이고, 한번 마음을 축이고, 그리고 다시 한번 내 마음 안에 욕심을 씻어 내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연화정을 바라보며 어떤 이의 '소유를 향한 갈망'도 씻어 내려가기를 합장했다.

20여분 정도 올라 초당터에 닿았다. 이곳 연화봉 초당에서 대종사는 일천정성으로 대정진, 대적공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석 달 동안 기거하는 데 먹는 식량이 쌀 1말 2되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종사는 연화초당에 들어가면서 가지고 간 쌀 한말이 초당을 나올 때 4되나 남았다고 전한다.

기거하는 석 달 동안 옷 한 벌로 생활했다. 밤에는 선정에 들은 채 날을 새우거나, 옷 입은 채 잠을 자, 그 옷이 다 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먹는 일도 잠자는 것도 모두 잊은 채 한번 자리에 앉으면 며칠을 그대로 입정에 들곤 하였던 것이다.

또 다른 일화도 전해진다. 하루는 팔산 김광선 대봉도와 함께 있는데 땅거미가 내려 않을 무렵 바깥이 소란스러워 문을 열어보니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대종사가 계시는 방을 향해 큰 절을 하며 예를 올리고 사라졌다고 한다. 아래 마을에 사는 초당 주인집 연동낭자가 대종사를 연모해 찾아왔으나 대종사가 이런 기운을 알고 낭자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타일러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종사는 초당에서 불철주야 정진으로 상당한 수양력을 얻었으나 이때 난행 고행으로 해수증(咳漱症)을 얻어 만년에 고생했다고 한다. 1915년에 이곳에 계셨던 대종사는 이듬해에 대각을 이루셨다. 치열하게 구도하시다가 한 발자국 더 내디딜 곳이 없는 자리가 바로, 연화봉 이 자리가 아니었을까.
▲ 소태산대종사 연화삼매지 기념비.
연화삼매지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옮겨 적는다.

'여기는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산 77의 2 소태산대종사 정진입정처 연화봉 초당터다. 우리 대종사 구원겁래의 뿌리깊은 서원으로 일찍이 발심 온갖 정성 바치시고 갖은 고행 닦으시되 그 소원 그 의단 풀길 없어 한스러운 적묵의 나날 지새우실제 딱하게 본 팔산 대봉도 명의 연강선생의 초당을 빌려 여기 계시게 하니 얼음물에 목욕하고 찬방에 밤새우며 한말 쌀 한 되 간장을 절반 남기시는 사무친 삼동정진이 이에 이루어졌다. 새해 들어 연동낭자의 일지춘심에 맑은 기개 한껏 보이시고 하산하시니 원기 전 일년이라 거룩할사 이 터전 새 부처님 대종사의 연화삼매지여 산하 대운이 진귀차도로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걷는다. 걷는 이들은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손잡을 수 있는 마음이 된다. 연화봉 초당터 길, 그 길은 곧 자신의 내면의 길이다. 그 길을 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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