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후에 대종사께서 일기를 수행의 과목으로 넣으신 것을 보고 의아(疑訝)해 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일기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께서 일기장 검사를 하셨습니다. 일기가 무엇인지 왜 쓰는지 무엇을 적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검사용으로 몇 줄 쓰거나 아예 쓰지 않아서 남들 집에 갈 때 화장실 청소도 많이 했습니다. 일반적인 일기는 신변잡기(身邊雜記)로 생활 속에서 일어난 일을 자유롭게 쓴 글이 많습니다. 물론 안네의 일기, 난중일기처럼 시대적인 배경이 있어 역사를 보는 눈이 된 일기도 있습니다.

우리의 일기는 수행일기입니다. 일원의 진리를 깨닫고 생활화하기 위함이지요. 교리의 실천에 표준을 두고 끊임없이 공부한 내용과 결과를 반성 대조하며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기는 상시 일기와 정기 일기로 나누어집니다. 상시일기는 상시 훈련 곧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 기재하는 것이며, 정기 일기는 정기 훈련 곧 선원 등에 입선해서 정기 훈련을 받을 때 기재하도록 하셨습니다. 상시일기는 유무념, 학습상황, 계문을 정기일기는 작업시간 수, 수입·지출, 심신 작용 처리 건, 감각 감상을 기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정기일기와 상시일기를 같이 기재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집약적으로 해서 깊이를 더하게 하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상시일기의 유무념(有無念)과 정기일기의 심신작용 처리 건(心身作用處理件), 감각 감상(感覺感想)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무정물은 생각이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각성(覺性)이 있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이 언제나 바르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시간 동안 육근이 작용한 결과로 어떠한 의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생각이 움직입니다. 판단을 내립니다. 좋고 나쁘고, 예쁘고 밉고, 높고 낮음을 결정해 버립니다. 집착되어 버립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은 집착된 방향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그것에 행동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 만 봐도 놀라는 법입니다.

유무념은 쓸모 있는 생각은 계속하고 쓸모없는 생각은 털어 없애자는 것입니다. 해야 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은 말자는 것입니다.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쓸모없는 생각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겁니다. 간단합니다. 보은의 마음, 감사의 마음이면 쓸모 있는 생각이며, 배은의 마음 원망의 마음이면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사사(私事)롭고 분수에 맞지 않고, 모자라거나 넘치는 생각이 일어나면 아! 마음이 일어났구나 하고 챙기고 지켜가자는 것이 유무념 공부입니다. 챙겼으면 유념 못 챙겼으면 무념입니다.

처음에는 챙기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고를 가지고 유념과 무념을 판단합니다. 나중에 공부가 익어 가면 결과가 잘 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합니다.

유무념 주머니는
대종사 때부터 내려온 공부 비법

일기를 쓰는 뜻은
전도되고 묶여 있는  마음 고치는데 있다


종법사께서는 '같이'를 '가티'로 발음하셨답니다. 상사님께 꾸중을 들으시고 '같이'를 발음 할 때마다 유념 공부를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 하나 고치는데도 몇 달을 하셨답니다. 물건하나 챙기고, 할 일 하나 제대로 하고, 습관 하나 고치는 일 까지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크게는 일상 수행의 요법, 계문, 솔성요론 등으로 대조를 하고 작게는 나쁜 습관이나 버릇 등 특별히 고칠 조항을 정하여 유무념 대조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대산종사께서 소중히 하시는 손가방이 있었답니다. 항시 그것을 열쇠로 잠그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정토회원께서 무엇이 들었기에 그리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유무념 주머니가 들어 있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그것이 뭐 중요하다고 그렇게 잠그고 다니시느냐고 정토회원께서 말씀을 하셨대요. 대산종사께서 "대종사님 때부터 내려오는 공부의 비법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는가!"라는 말씀을 하셨답니다.

정기 일기의 내용 가운데 중요한 것이 심신 작용 처리건과 감각 감상입니다. 심신 작용이란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그 내용을 사실 그대로 사진 찍듯이 기록하는 겁니다. 가령 앞에 길을 걷는 사람이 지갑을 흘리고 지나가면 그것을 보며 어떠한 마음이 일어 날 것입니다. '앞사람 몰래 집어 들까?' 아니면 '저 사람에게 돌려줘야지!' 등 생각이 일어나게 되죠. 그 다음에는 돌려주거나 아니면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거예요.

작용이 어떠한 경계에 일어난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처리 건은 일어난 마음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의미합니다. 작용이 1차 마음이라면 처리 건은 2차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어떠한 방향으로 일어나게 하는 상황을 경계라고 합니다. 경계에 휩쓸리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요. 불의를 행하게 되어 죄고를 장만하게 됩니다. 경계에 끌리지 않고 의연히 행할 바를 행했다면 복락을 마련하는 겁니다.

경계를 만나서 자신이 처리한 그대로를 기록하여 하루의 시비이해를 따져 보는 것이 심신 작용 처리 건입니다. 유무념 대조 한 내용을 기재하면 아주 이상적이라 생각이 됩니다. 일원상 서원문에 보면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의 진·강급이 결정된다고 하셨으니 심신 작용 처리 건을 기재하는 공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감각이란 느껴서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물을 대하거나 일을 하다가 이치가 의심 없이 알아지거나 실천을 통해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치에 밝아짐이 생긴 것이지요. 감상이란 마음에 느끼어 일어난 생각을 말합니다. 이치의 대소유무에 밝아진 바를 기재하자는 것입니다. 감각과 감상이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나 감각이 깊이가 있는 것이라면 감상은 감각보다 그 폭이 다양하다 하겠습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사진을 찍어 판단하고 치료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기를 쓰는 큰 뜻은 전도되고 묶여 있는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아 고치는데 있습니다. 바르고 정확하고 세밀히 기재하지 아니하면 상태를 진단 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경계에 마음이 동하고, 어느 계문을 자주 범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일기입니다. 그러니 나의 마음을 그대로 찍어내야 하겠습니다.

<교화연구소>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