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것에 익숙합니다"
우주적 리듬으로 한가한 생활
선비정신 살려내는 작업 계속

▲ 강기욱 기획실장.
가을 빛이 완연한 날, 행주 기씨(幸州奇氏)의 집성촌인 광주 너브실에 도착했다. 담벼락에는 맨드라미가 줄지어 서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주변 풍광을 살펴보다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아들 효증이 시묘살이한 곳에 건립된 칠송정과 고봉의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는 월봉서원을 거쳐 목적지인 애일당(愛日堂)으로 향했다. 그러나 큰 고택이 있는 애일당에 들어서기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대문 한쪽에 나 있는 쪽문 높이가 낮은 관계로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고봉학술원 강기욱(53)기획실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편함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로 그렇게 낮춤을 실행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1월에 애일당에 터를 잡은 이후 그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는 "애일당 소유주는 고봉 기대승의 13대 후손인 기세훈 변호사다. 300년의 역사를 지닌 집이다. 애일당은 글자 그대로 오늘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찰나 찰나, 순간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이라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의 표정에서 알차게 소요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처럼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 내면의 초탈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는 "시간 공간으로 베를 짜는 것이 인생살이다. 그럼에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유감은 공포다.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나한테 끌려 다니는 것이 어렵다. 날마다 전기계량기를 자가 검침 하듯이 나를 체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놀면 놀아서 좋고 쉬면 쉬는 것이 좋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 상호 관계성을 살핀 것이다. 그는 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7년동안 이을호 다산연구원장님을 시봉했다. 연구원이었지만 무보수였다. 이야기하는 속에 많은 배움이 있었다. 선생님과 같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됐다. 그러다 소쇄원에 생활하던 중 33세에 결혼했다. 직업은 없었다. 그래도 한가했다. 애일당에서도 자신과 잘 놀았다"고 강조했다.

대문만 닫으면 마을속의 또 다른 성이 되는 애일당. 대지 11,550㎡ 가 되는 만큼 그의 품도 넓어졌다. 그가 남의 동네에 와서 잘 놀수 있는 터전을 닦은 것이다. 그는 초기 3년을 천일기도라 표현했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안하기가 어렵다.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수 있기까지 최소 3년에서 길게는 10년이 필요하다. 사회의 리듬이 나만의 리듬감과 함께 가지 못하기에 내 스타일로 가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도 3년의 천일기도 기간을 잘 지내야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을 일러 '노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하루를 놀면 하루를 쉬고 하루를 쉬면 하루를 놀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틀 연속 쉬거나 놀면 몸과 마음의 리듬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도 너무나 자기를 내버려 두는 원인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돈이 인생의 가치를 전도시켰다. 시간이 없고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 미래에 대해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한가한 마음을 가지면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 강 실장이 권해 준 따뜻한 차 한잔.

그는 그동안 사회적 리듬을 버리고 우주적 리듬을 자신속에 잡아들여 일치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그가 얻은 소득은 많았다. 낙천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사계절이 그에게는 한가로움이었다. 그는 봄, 여름과 가을 빛을, 겨울에는 나무 속살들이 보여서 좋아했다. 이를 통해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일치시키는 작업을 했다. 최근에 아리랑을 재 해석한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는 "아리는 아는 것이요, 랑은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이 만나는 작업이 아리랑이다. 현자들이 깨우친 것을 민중들의 노래속에 담아서 가르침을 줬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뜻을 지닌 학이시습(學而時習)이 실천되니 즐겁다"고 말했다.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실천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와달리 학자들은 언어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저 느끼면 되는데 머리로 세상을 보려고 하고 판단한다는 내용이다. 발병이 되는 것도 자족이 안되는 까닭임을 일깨워 줬다.

그는 "아리랑이 되지 않으면 나를 버리게된다. 아리랑은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사고한다고 볼 수 있다. 본원적으로 보면 이기일원론도 마찬가지다. 다산철학의 핵심은 신형묘합(神形妙合)이다. 그 정신이 이기일원론이다. 맥락으로 보면 고봉학이 다산학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심청전을 마인드 클리닉이라 보았다. 심봉사는 학문은 정점에 이르렀는데 마음이 봉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리랑이 안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후 심봉사가 눈을 뜬다는 것은 배운 자들이 개안(開眼)한다는 의미다.

그는 "지식이 우주와 합일이 되지 않으면 지식은 내 삶의 방해가 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것은 지식이 발효되는 과정이다. 에고를 없애고 자연과 내가 합일된 것을 의미한다. 가정에서도 아내에게 존경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의견을 내 놓았다.

그는 애일당에서 우주적 안테나가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이미 소쇄원에서 생활할 당시 자연과 일체가 되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워밍업을 한 뒤 애일당에서 소요하는 삶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그는 "애일당에서 생활하다 보니 각기 다른 단어들이 응축되어 새로운 단어로 태어났다. 생각들이 발효되어 새로운 단어들이 탄생되는 것을 알아챘다. 개념들을 새롭게 정립했다. 자기 언어가 개발된 셈이다. 일정기간이 되니 한때 지루하게 생각되었던 논어 강좌와 노자 강독회를 비롯 고봉학 강좌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봉문화제도 열고 있다. 일련의 작업들은 16세기 서원을 21세기 서원으로 살려내기 위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의 노력은 조선 성리학을 새롭게 재해석 시키려는 일환으로 볼수 있다. 차 한잔을 마신 후 애일당 주변을 살펴보니 죽로차의 향기가 진하게 났다. 이어 그의 배웅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애일당 쪽문을 나오기 위해 몸을 숙였다. 겸손을 다시 한번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 월봉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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