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현장에서 변화 바람 일으켜야

올해가 예비교무과정 5년을 마치고 원불교 교무로 출가한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또 단독 주임교무로 교당에 인사발령 된 첫해이다. 윗 어른의 훈증에서 독립하여 교화자로서 홀로선 것이다. 20년의 시간동안 교당을 벗어나지 않고 현장을 지키면서 "여건이 안되어 안된다는 고리를 끊어서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서원을 세우게 됐다. 사실 남성교무가 교화현장을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안다. 많은 남성 선배 교무들이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교화현장의 1번지인 교당이 아니라 기관에서 출가자의 본분을 지키고 있다. 동기 교무들과 후배 교무들도 마찬가지다. 여성교무들이 지켜온 교당교화 현장을 기혼자인 남자교무들이 감당하기엔 환경적인 요인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교무들의 주밀한 헌신성에 바탕하여 남성교무들의 폭넓은 아량도 통하는 이치를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객기 일지라도 말이다.

'변산구곡로에 석립청수성' 〈대종경〉 성리품 11장 법문을 새겨본다. '변산'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변산(邊山)은 끝자리, 가장자리에 있는 산이다. 가장자리의 의미는 사물의 바깥 경계를 이름한다. 즉 중앙에서 떨어져 있는 부분을 말한다. 뜨거운 호박죽을 먹을 때 방법이 있다. 그릇의 주변을 수저로 돌리면서 호호 불어 죽을 뜨면 죽이 식어 먹을 만 하게 된다. 산은 어떤 공간인가? 산에는 숲과 계곡, 나무와 새, 풀 벌레, 각종화초가 공존한다. 작은 영산회상이 산이다. 변산구곡로의 의두를 연마해보면서 교단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알게 됐다. 결국 변화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맨 가장자리 교당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교당이 교화현장의 최일선이기에 변화는 결국 교당에서 일어난다. 교당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교당이 행복하면 남자교무님들도 기관으로 가지 않을 것이고 교화현장을 폭 넓게 가꾸어 갈 것이다. 지역의 인맥, 정보, 경제를 제대로 돌려 이웃종교인, 지역민들과 화합하고 지역을 살려준다면 지역의 인심이 원불교를 보호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것이 사은의 위력이고 진리의 힘임을 남원에서 9년 살면서 경험하고 체득하였다. 교당은 원불교 집만이 아니라 지역민 모두의 공소(公所)가 돼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원불교가 강점으로 들고 나서야 할 깃발들이 많다. 첫 번째의 깃발은 신(信)이다. 신은 믿음으로 진리와 나를 하나로 이어 한 몸이 됨이다. 즉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 믿음이 내 몸에 강림함이 신내림이다. 하늘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불안해서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 두 번째 들고 나서야 할 깃발은 공(公)이다. 믿음이 수직적 개념이라면 공은 수평적 개념으로 여기서 만물이 평등하게 만난다. 종교인 비종교인을 막론하고 공개(公開)경쟁을 한다고 할 때 누가 더 대중에게 유익을 주었는가 못 주었는가로 판결이 난다. 학연·지연·혈연·종교 인연을 떠나서 뭇 중생들에게 얼마나 많이 도움을 주었는가가 핵심이다. 원불교가 원불교만 위하면 원불교 교도들만 은혜를 갚지만 원불교가 이웃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에게 똑같이 도움을 주면 그들도 우리가 어려움에 처 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것이 인정이고 사람마음이 하늘마음이라는 증거이다. 세 번째 깃발은 화(和)이다. 지금의 시대는 이웃과 네트웍을 형성하여 연대하고 함께 넘나들어야 발전한다. 그만큼 세계가 좁아졌고 하나로 만나고 있다.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생각은 독선이고 아집이며 오만이다. 상대방이 90% 다르지만 10%가 같다면 1/10을 보고 함께 해야 나에게 운세가 돌아온다.

<순창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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