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교화, 다크호스로 우뚝

▲ 법회 후 전역예정 병장 상담.

한 장병이 무려 6주 만에 교당에 와서는 우세관 교무에게 쪽지를 남겼다. "교무님! 제발 천막 교당이라도 하나 더 지어주세요. 아니면 밖에 서 있을 테니 군 버스라도 한 대 더 요청해주세요." 날로 늘어가는 장병들 덕분에 3백 명 들어가는 비닐하우스 백골대각전도 지었건만, 450명이 한계라 800명까지 보내겠다는 부대 요청에 교무가 손사래를 쳐야 한다. 10월이면 완연한 겨울인 혹독한 철원 날씨에도 장병들은 창 너머 언 발로 설법을 듣는 이 곳, 매일이 '즐거운 비명' 중인 김화교당이다.

군교화의 샛별이자 다크호스가 단연 에이스로 우뚝 섰다. 3사단 내 종교활동 수가 월등히 많아 이른바 '알동기(훈련소와 자대배치를 함께 한 동기)'를 찾아 원불교에 올 정도다. 전역을 앞둔 장병들과는 차를 마시며 상담도 하고 고향의 교당과도 연결한다. 장병들이 입교를 하면 해골 모양으로 새겨진 나무 염주를, 전역을 앞두면 칭따오교당에서 보내주는 흰돌 해골(백골) 염주를 받게 된다. '한번 백골인은 영원한 백골인인 것처럼 한번 도반은 영원한 도반'이라는 김화교당의 마음이다.

GOP 근무에도 끊이지 않는 시스템 교화

원기96년 부임한 우세관 교무의 첫 법회에는 23명의 장병이 찾아왔다. 군교화가 처음인 우 교무는 8개월의 GOP 근무 때 법회의 맥이 끊기는 현상을 보고 발로 뛰며 시스템교화의 로드맵을 그렸다. 3사단은 4개 연대가 8개월 간격으로 GOP에 들어가 철책을 지키는데, 들어가면 법회를 보러 올 수 없다. 자대근무 중 절반 가까이 교당과 멀어지는 것이다. 끊임없는 두드림과 노력으로 토요일마다 GOP안의 백골혜산진·진백골 두 교당에서 법회를 보는 지금, 장병들은 GOP 근무를 끝내고 나와도 계속 교당을 찾는다. 입교부터 전역까지 2년을 꼬박 만나는 원불교 교당. 이웃종교에서도 주목하는 김화교당의 '시스템교화'다.

"지금이야 더 오면 어떡하나, 하는 호사를 누리지만 첫 해는 적잖이 힘들었다. 은혜의 책보내기 운동과 위문, 5년 동안의 군교화 역사가 큰 힘이 됐다"며 즐겁게 회고하는 우 교무. 그러나 부임 첫해에는 그야말로 막고 품는 심정으로 '뭐라도 하자'는 마음뿐. 연마 끝에 찾아간 한 부대. 그는 담당자에게 "제가 상담을 잘한다. 관심병사(적응이 힘들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어 특별 관리하는 장병) 있으면 교당으로 1박2일만 보내 달라"고 했다. 실탄을 다루는 3사단 특성상 관심병사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높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우 교무는 교당에 온 관심병사와 상담도 하고 목욕탕도 가고 기도도 함께 올렸다. 교당에 다녀온 관심병사들이 달라지자, 점점 군부대들의 자세도 바뀌었다.

그는 "한 장병의 아버지는 '군대에 적응 못해 걱정이었는데 원불교가 사람 만들어줬다'고 구리교당에 손잡고 가서 입교하고 부자가 사이좋게 교당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과 부대 특성을 잘 살핀 우 교무의 아이디어는 또 있었다. 인근 장병들이 주말이면 외박을 나와 와수리에서 머무는데, 잘 곳이 없어 편의점이나 PC방 근처를 배회하는 일이 많다.

그는 "와수리 터미널 근처에서 편의점을 하는 교도님에게 '잘 곳 없는 장병들을 교당으로 보내달라' 부탁했다. 자는 대신 다섯시 좌선하고 기도 한 시간만 함께 해달라고 했다. 아침까지 해서 먹이고 보내니 참 많은 장병들이 다시 찾고 인사도 하러 온다"고 강조했다.
▲ 간식은 고구마와 생수.
관심사병, 외출 장병에게 문 연 교당

김화교당은 '교당에서만큼은 편하게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한다. 그렇다고 풀어질리 없는 장병들의 자세나 마음, 그만큼 의리도 최고란다.

그는 "한번은 부활절이 일요일이니까 이웃종교도 알고 축하도 할 겸 교회에 가라고 했다. 그런데 전보다 더 많이 교당에 왔다. 왜냐고 물으니 '이럴 때 일수록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웃었다" 고 밝혔다.

한 달에 한번 도너츠 및 음료수를 들고 5백여 명의 대대를 위문하고 연말이면 원불교 달력을 내무반마다 돌린다. 빠듯한 살림에 달력 제작은 다소 무리지만, 자연스레 원불교를 접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또한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한 장병들에게 '조금 더 좋은 간식'은 효과만점. 20~30원 더 나가는 간식에도 '원불교는 역시 다르다'며 좋아한단다.

그는 "격주로 과자 한번, 만든 음식 한번을 주는데 교당 교도들의 공로가 정말 크다. 떡볶이며 국수, 순대볶음 등 손 가는 음식은 전날 미리 다듬고, 교당 곳곳에 장병들 위한 배려에 힘을 써주신다"고 말했다.

'창 너머 우산 쓰고 설법 듣는 장병들'

원기96년 첫 법회에 두 명이 앉아있었던 김화교당. 그마저도 부부라 일이 있어 못 나오면 수요일 저녁 8시 법회는 우 교무 혼자 봤더랬다. 이듬해 목표가 '1년 중 법회 70%는 보자'였을 정도. 그러다 철원 지역에 점점 '원불교 김화교당'이름이 알려지면서 귀한 인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특히 세 가족이 식당을 운영 중이라 참석이 쉽지 않은데도 점차 '수요일은 7시까지만 영업합니다'를 내걸고 법회를 찾았다.

'우리 교무님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교무님'이라며 쑥쓰러워하지도 않고 한 목소리 내는 교도들. 이제는 교화단인 통일단 1개와 내내 꼬물대다가도 좌선과 사배는 곧잘 하는 어린이단 평화단 까지 15명 안팎이 한 식구처럼 법회를 보고 있다.

젊은 가족 비율이 많은데 "집안 대소사 문제까지도 교무님과 상의한다"며 우 교무를 형 삼아 친정오빠 삼아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이미 겨울이 한창인 철원 김화, 수요일 저녁 법회 후 교도들은 "우리 교당 잘되는 이유요? 백개 천개를 다 댈 수 있지만 교무님 설법이 최고다. 교무님 설법 들으면 일주일 피로가 다 풀린다. 우리 아들들(장병들), 간식이다 뭐다 해도 설법이 좋으니 찾아온다. 장병들이 비가 오는데 창 너머로 우산 쓰고 설법 듣는 모습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다 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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