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전 교무(상임논설위원)
우리 교단의 4대 경절중 하나인 '법인절'은 범산 이공전 종사의 제언으로 공식화 됐다. 그는 원기40년, 원광11호에 '7월 26일을 기념하자'는 제하로 사설을 썼다. "구인선진들이 생명을 걸고 우리 회상의 성공을 연원 지어 준 날이며, 신성의 최고 표준, 단결의 최고표준, 무아봉공의 최고 표준을 실지와 기적으로 보여준 날이다"고 했다. 때문에 "이날을 '혈인의 날' 또는 "전무출신의 날'로 정해서 전무출신의 표준정신이 허공법계에 드러난 것을 기념하자"고 주장했다.

그해 음력 당일에(7월26일) 총부에서 뜻있는 동지들이 간소한 '기념기도식'을 가졌다. 그것이 교단에 좋은 반향을 불러 일으켜 원기41년 교무연합회에서 교단의 새로운 기념일로 제정했다. 정산종사는 이날을 '법인기념일'일이라 명명해 주셨다.(〈범범록〉 289쪽 참조)

구인선진들은 법인성사를 통해 교단의 창립정신인 법인정신을 낳았다. 하나는 "그대들이 죽어야 이 회상이 세상에 드러나고 창생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대종사의 말씀에 절대 복종한 '무아신성'의 정신이 나왔다. 둘은 "우리회상의 창립을 위해 다함께 죽자"고 서로 약속을 하고 한 사람도 중도에 이탈하지 않는 '일심합력'의 대단결 정신이 나왔다. 셋은 "우리가 죽어서 천하창생이 구원을 받는다면 기쁘게 죽을 수 있다"며 '사무여한'이라고 쓴 종이위에 백지장을 찍어 혈인이 나타나게 한 '무아봉공'의 정신이다. 여기에 저축조합, 방언공사, 총부건설 등을 통해 발현된 이소성대(以小成大)의 4대정신은 우리 회상 창립의 정신이자 영원무궁토록 전해야 할 교단 만대의 유산이다. 우리 교단의 신앙의 뿌리는 구인선진들이 실증해준 법인성사에 있다.

〈정전〉법위등급 중 출가위 조항을 보면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사람의 위'라 했다. 생명을 바쳐 우리 교단을 법계로부터 인증을 받게 한 구인선진들이야 말로 출가위중 출가위라 할 수 있다.

외교가 능해 대외활동의 창구가 된 일산 이재철 대봉도. 초기 교단 인화의 표본이 된 이산 이순순 대호법. 대종사로부터 최초의 견성인가를 받고 지덕을 겸비한 삼산 김기천 종사. 공중사에 신명을 아끼지 않은 공심가 사산 오창건 대봉도. 어려운 일을 앞장서 실행하면서도 상없는 무상도인 오산 박세철 대봉도. 대종사의 친동생으로 대종사를 대신해 부모 봉양을 하며 회상 창립에 공을 세운 육산 박동국 대호법. 대종사의 외숙으로 제자가 되어 독실한 신성을 바친 칠산 유건 대호법. 대종사의 첫 제자로 정신·육신·물질을 모두 바치며 협력한 팔산 김광선 대봉도. 상수제자요, 후계종법사로 교단의 기초를 다져준 정산 송규 종사.

구인선진들이 무아신성, 일심합력,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이뤄낸 법계인증의 법인성사가 아니고도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을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출가위의 성자로 모두 받들어야 할 것이다.

법인절을 기념하자고 최초로 제언한 범산종사가 지난 9월 24일 열반했다. 발인을 앞두고 경산종법사와 많은 대중이 함께한 자리에서 추모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효산 조정근 종사는 우리 교단사를 새롭게 쓸만한 중요한 내용을 발표했다. 범산종사가 열반을 앞두고 "'구인선진'이란 명호를 생전에 바꿔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원기100년 안에 다른 존호를 드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경산종법사를 비롯해 자리에 함께한 많은 대중이 공감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용해온 명호를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진'에 대한 느낌은 선·후배를 넘어선 따뜻하고 성스러움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올바르게 받들어 드리는 일이라면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고쳐 부르는 일이 더 합당한 일이라 생각한다. '구인법인성자' '구인성자' '법인성사' 등 적절한 존호를 잘 연마해서 우리회상의 뿌리를 세워 주신 선진님들께 누가 되지 않는 후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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