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챙기며 성공을 하다가도 남편 경계를 따라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마음공부는 놓아지지 않았다.

네 아이들이 주는 경계는 큰 걸림 없이 해결이 되었으나, 남편 경계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만큼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경계도 많았다.

그러나 바람과 기대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누구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원래는 없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차츰 내 마음을 해결해 나갔다. 이는 마음공부하는 남편과 경계를 공유하며 챙기고 대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광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자격증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또 내 성향이 사회복지에도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기83년 교무님의 추천으로 원광대학교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원불교 기관에서 타고난 열정을 쏟아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졸업 후 근무한 곳이 대전중리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천직인 줄 알고 즐겁게 생활하려 애썼고, 열정적으로 봉공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8년여 동안 도서관사서, 청소년·장애인·노인복지 등 열정을 쏟은 만큼 보람도 컸다.

그러나 때로는 음의 진리가, 때로는 양의 진리가 수없이 나타나는 경계를 헤쳐 나오며 그래도 기쁨과 보람을 느꼈던 것은 교법으로 신앙하고 수행하며 그 경계로 일어난 마음 작용을 공부 거리 삼고, 그 지낸 일을 남편과 문답하며 밝아진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 기간 중에 경험한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와 여러 교육은 내 삶에 큰 도움으로 작용했다. 평소,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은 교육을 통해 더욱 눈을 뜨게 했고, 후일 제2의 직업 선택에 큰 바탕이 됐다. 지금도 그때의 여러 인연들과 모임도 하고, 크고 작은 집안 애경사에 교류도 하고 있다. 젊은 후배 동료들의 인생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마음공부의 덕이다. 마음공부에도 숙성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마음공부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달려가기만 하던 남편이 3년을 넘기고 5년을 지나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주위도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게 됐다.

더불어, 마음공부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하던 마음과 요란하던 마음도 놓아지기 시작했다. 챙기고 대조하기가 일상생활로 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도, 남편도 변해갔다. 나는 체질상 아침 잠이 많아 새벽 기도와 좌선이 너무나 어려웠음에도 기도와 좌선만이 진정한 공부인 줄 알고 몇년 전 집근처의 둔산교당에서 50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병이 난 적이 있다. 새벽 기도와 좌선을 안 하면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새벽 기도와 좌선을 못하여 공부 못한다는 생각에 잡히기보다는 잘 되는 생활 속의 경계로 하는 마음공부가 내 스타일임을 알게 됐다. 결국 어떤 공부이든 하기만 하면 하나의 세계에서 만나 두루 통할 것임을 알기에 단점은 회피하고 장점은 살리는 방향으로 공부 전략을 세웠다.

원기94년 복지관을 퇴직한 얼마 후, 모 발효생장품회사에 출근했다. 친환경적이면서 자리이타하는 정신으로 서로를 살리고 키워주는 시스템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우리 교법의 훈련장이었다. 남이 갖지 않은 마음공부법은 동료를 대하거나 고객을 대할 때마다 그 마음을 알고 관계를 잘 하게 하는 불공법이 되니 나를 성장시키는 훌륭한 무기가 됐다. 마음공부를 하며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되니 참으로 좋다.

하루의 일정을 계획하며 실행하는 생활 속에서 총천연색으로 일어나는 여러 마음을 공부하고 불공하니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공부를 하면서 일도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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