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활불 시대

▲ 김대선 교무 / 평양교구장
나의 출가는 필연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태교로부터 시작, 기도와 발원하심을 이제야 알듯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매일 이른 아침 기원문과 독경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염원이자 공덕이라고 믿고 싶다. 원불교와 인연도 원기50년 입교하여 법명을 평선(平善)으로 받았다. 어머니 따라 군남교당까지 도보로 40여분 시골길을 걸어서 갔다. 이후 광주에서 중학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가까운 서광주교당, 서울교당을 틈틈이 출석함도 태교의 공덕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교당을 떠나지 않고 전무출신 서원하고 일원대도 선양에 큰 불사에 동참하는 큰 은혜를 받았다고 확신한다. 이후 어머니의 축하 속에 출가 서원 후 원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예비교무시절 대산종사를 모시고 원불교학과 전체인사와 보고하는 자리에서 나는 보고가 끝난 후 대산종사께 법명을 개명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처음에 대산종사께서는 "법명을 대중(大中)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당시 김대중 선생이 유명한 때라 나는 다시 지어줄 것을 요청했다. 대산종사는 다시금 묵언하시더니 "그놈 별난놈이다"고 하시며 대선(大禪)이라고 법명을 주셨다. 이후 난는 법명을 내 나름대로 크게 터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이름값을 하기로 서원했다. 스승님께서 주신 법명을 일원대도의 터전을 일구라는 부촉으로 받아드리고 오늘도 묵묵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교화 10년차 서울사무소 근무할 때 주업무인 대정부 업무, 이웃종교 업무, 홍보언론 업무를 보와오던 중 특히 매년 대각개교절을 맞아 언론홍보일환으로 대산종사는 일간지 신문사와 대담을 정례적으로 하셨다. 매년 기자접견을 왕궁영모원 비닐하우스에서 하셔 감동을 주시곤 했다. 하루는 나에게 "모든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혼자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고 말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모습을 보시고 아만심으로 꽉 차있다고 보신 것 같았다. 간혹 나만이 가진 특권이라고 할까 종법사와 일간지 신문 대담 진행은 고유업무로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나의 권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점을 보셨는지 나에게 큰 법문을 해주셨던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이 법문을 받든 후 인사기가 되면 다시금 이 법문을 새기곤 한다. 모두가 그 자리 있게 되면 역량을 발휘케 된다. 최선을 다하고 공사에 전념하기 위해 배움을 놓지 않듯이 남들도 주야로 정성과 정성을 통해 자신을 조각해 감을 잊어서는 안되 듯이 일터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통해 생산적인 활동을 중시하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불교학과 졸업할 때 해주신 대산종사 법문이 떠오른다. 대산종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아니라 여의주가 용의 발가락에 있는 작품을 보여 주시면서 "앞으로는 활불(活佛)시대다. 활동하는 시대다. 도인들이 선방이나 토굴에 있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불과(佛果)를 이룩해야한다. 선천시대는 여의주가 입에 있었으나 이제 후천 개벽세상에서는 실천·실행을 중시하므로 산부처가 존경받고 세상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부촉했다.

대산종사 탄생100주년을 맞는 길목에서 우리 세대 누구에게 나 스승님은 가슴속 깊이 자리하고 계실 것이다. 스승님의 염원이자 교단의 염원인 종교연합운동은 이제 전 인류의 과제이자, 다종교 다문화시대의 화두이다. 하루속히 평화통일이 되어 세계의 명산인 금강산에 세계종교연합운동본부가 세워져 일원화와 평화의 꽃을 피워내는 교단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