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파문이 방죽 가에 닿아 사라질 즈음 수면에 물체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는 바랑을 벗어던지고 첨벙첨벙 방죽에 뛰어들어갔다. 한강변 종남산 두뭇개에 살 때 어둠살이 내리고 인적이 끊어지면 신중들은 곧잘 물속에 자멱질을 했다.



온몸에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았을 때 그녀들은 한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들 헤엄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두뭇개 건너까지 열 번은 더 오갈 자신이 있었다. 그녀들은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시간을 잊었다.



"새댁, 정신이 드오?"



산발한 머리지만 얼굴이 곱고 풀어헤친 가슴은 할 퀸 자국에 피가 엉겨 멍이 들었다. 강변에서 몇 번 지켜 본 경험으로 코를 빨고 가슴에 압박을 가하여 새댁이 푸우 숨을 내뱉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안심하였다.



시주가 후하고 살림 두량이 야무진 그 새댁이었다. 늙은 어미와 일 잘하는 남정네를 두어 참으로 당차게 살림을 꾸려간다고 보았는데 왜 목숨을 버리려고 했을꼬.



"시님, 지송하그만이라." 인경이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인지 모르오나 집으로 갑시다."



"안 가요. 그 지옥에는 다시 안 가요."



인경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새댁이 어느 가슴에서 저런 단호한 목소리가 나올까.



그녀는 생각했다. 열여섯에 달거리가 시작되자 손이 없는 집에 소실로 들어가서 3년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그리고 삼칠일도 못되어 퉁퉁 분 젖가슴을 안고 쫓겨났다.



논 닷 마지기에 딸을 팔아먹은 친정집을 원망하며 절집에 들어갔다. 핏덩이 아기 생각이 날 때마다 그녀는 탁발을 나서 정처 없이 전국산천을 떠돌았다. 그 아기가 장성했으니 벌써 새댁 같은 각시를 얻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쩌고?" "엄니가 키우겠쥬."



참으로 모진 여자다. 어미 입에서 어찌 저런 말이 나올까.



"인연이 아니면 못 살지. 인연이 무상한 거라."



솔숲에서 젖은 옷을 쥐어짜고 훌훌 털어 다시 입고 두 사람은 길을 나섰다. 먼산에 푸르스름하게 이내가 어리고 있었다.



"참 이상하네요. 오늘 저녁을 새댁한테 신세질 작정을 했는데……"



"지송하그만이라."



"저기 재 넘어 아는 시주 댁이 있으니 거기 가서 하루 밤 지냅시다."



그녀는 사내처럼 앞서서 허적허적 길을 나섰다. 인경은 놓칠새라 그 뒤를 쫑쫑 따라갔다. 사위는 어두워오고 하얀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경을 구해 준 신중은 한강변의 두뭇개 [豆毛浦] 승방 정인승이었다. 그 길로 인경은 경성으로 가 정인승의 상좌로 2년간 살았다. 두뭇개 승방은 현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남산의 끝자락 달맞이봉 아래 있는 미타사이다. 출가한지 3년째 되던 해 인경은 계룡산 동학사에 들어가 나반존자 독송을 하며 주력(呪力) 공부에 지성을 다하였다. 여기서도 도통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자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전주로 내려와 한창 유행하는 태을주 치성을 하였다.



그때부터 인경은 영험 있는 기도터를 찾아 각지를 돌아다녔다. 기도를 하러 다니자면 여비도 있어야하고 제수 비용도 만만찮았다. 본시 경제적인 수완이 있는 그녀는 이때부터 비단장수를 하며 절집의 화주 노릇도 하고 기도꾼들의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완주(전주)와 진안 경계에 있는 만덕산 미륵사는 생남불공 기도발로 소문난 절이다. 미륵사는 진묵대사가 중창하였다. 생남불공이 들어오면 진묵은 먼지털이로 칠성각의 불상을 탁탁 치며 일렀다.



"어이, 아이 하나 태워줘라." 그때부터 미륵사는 생남기도터로 소문났다.



미륵사에서 산마루 너머에 용한 산제당이 있단 소리를 듣고 인경이 넘어왔다. 산제당은 중길리 상달 마을 뒤 불당골 위에 벼랑바위를 등지고 있는 3칸 기와집이다. 좌포 김승지네 산제당이었다. 섬진강 상류 오원천 좌포에 김해김씨 안경공파가 세거하였다.



산제당은 좌포 김해 김씨 종가댁 김 승지가 부종병으로 고생하는 며느리(宗婦)를 위해 지은 새집이었다. 좌포 나무실에 사는 김씨네 당골 무당이 9년간 공을 들여 종부가 건강을 회복하고 아이를 낳자 김 승지는 이를 고맙게 여겼다. 김 승지가 며느리에게 하고 싶은 게 무어냐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제 병을 낫게 해준 당골네에게 산제당을 하나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만덕산 불당골에 산제당을 짓고 그로부터 당골네는 이곳에서 승지댁을 위하여 공을 드렸다. 당골네에게 좌포리 봉촌에 사는 임실댁을 살림꾼으로 붙여주었다.



최인경이 만덕산 산제당과 좌포 김 승지 댁에 내왕하기 시작한 것은 기미년 뒤의 일이다. 미륵사 화주 노릇도 겸사하여 인경은 비단을 팔러 좌포 승지댁에 드나들었다. 집안이 괴괴한데 약 다리는 냄새가 은은했다. 외따로 떨어진 별채에서 가끔 피를 토하듯 격렬한 기침소리만 날 뿐이었다.



"이 집에 우환이 있그만이라?"



근심스럽게 묻는 비단장수의 말에 승지댁 본부인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혀를 끌끌 찼다. 언짢은 기색을 보고 인경은 아차 싶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물러나왔다.



소실의 처소를 찾아가 인경이 은근히 걱정을 하자 그녀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뇌짐에 비방이 있으니 승지어른께 잘 말씀혀시오"



귀가 솔깃하여 다가앉는 작은부인에게 인경은 장담하였다.



"내가 간병할 텐게요. 그래도 되겠소?"



병이 옮을까 식구들은 물론 아랫사람까지 꺼리는 판에 자진하여 병치레를 해주겠다니 감지득지하였다. 소실의 소생이나 귀한 아들이었다.



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인 간병을 하는 인경을 보고 김 승지는 감복하였다.



"조용하고 영험한 데서 산신기도를 혀야 효험 있그만이라."



"용한 데가 어딘겨?"



"만덕산 산제당이면 좋겠구만이라."



"그러소."



"아무리 병자라지만 내외가 분명하지라오."



"따로 하나 집을 지어주제."



산제당 골짜기 건너에(현 원불당 자리) 따로 갈대 초즙 헛간을 짓고 방을 하나 들였다. 환자는 산제당에 거처하고 인경은 새로 지은 갈대 오두막에서 지냈다. 인경의 극진한 간병으로 아들이 차도가 있게 되자 인경은 김 승지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산제당도 인경의 관리로 넘어오게 되고 당골네는 좌포 나무골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인경은 승지댁으로부터 중길리에 논 닷 마지기를 얻을 뿐만 아니라 상달 근방의 산전을 관리하는 특권을 얻었다.



산촌 논밭떼기 마름질을 하게 되자 인경은 개금실 가족을 불러들였다. 식구들이 중길리 상달에 이사 온 뒤에도, 좌포 사람들은 그녀에게 서방이 있는 줄을 몰랐다.



조 서방을 집안 머슴으로 알았다. 인경이 워낙 김 승지의 신임이 각별하여 승지의 첩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최인경은 자기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감히 상종할 수 없는 억세고 사납다는 악평을 들었지만 자기보다 나은 윗사람을 섬기고 받드는 데는 타고난 비상한 감각이 있었다.







*만덕산성지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는 〈다음〉카페 〈원불교 역사의 광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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