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교구 교도강연대회

▲ 울산교당 이원선 교도
오늘 발표하고자하는 강연 내용은 '팔자를 고쳐준 유무념 공부'라고 감히 이름 붙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비하지만 제가 해 왔고 하고 있는 유무념 공부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리고자합니다.

저는 원기62년도에 입교해 약 십 수 년 동안은 교무님 설교 말씀이 너무 좋고 교당에 오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교당을 오갔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남편 형관 씨 한테 간경화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로인한 퇴직,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치료와 재정 문제 모두가 힘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건강이 조금 나아져 다시 사업을 시작하자 IMF가 터져 사업이 부도가 났죠. 너무나 막막하고 힘든 시기가 연속해 왔습니다. 저는 오직 심고와 기도, 경전공부를 유무념 공부로 법신불 사은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때로는 씽크대 앞에 서서 밥을 하면서도 "사은님 사은님, 법신불 사은님/ 고통이 변해서 기쁨이 되도록/ 감사의 기도 속에 살게 하소서/ 항상 즐거웁게 일하게 하시고/ 항상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듯 성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현실은 어려웠지만 그 때 그 일 들로 진리와 대종사님께 더 큰 믿음을 갖게 되었고 진리 속에서 작은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의 희망이 되어준 것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종사님께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라고 하신 엄교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엄한 교사였어요. 그래서 좀 더 따뜻하고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유무념 조목을 칭찬하기로 정했어요.

수업을 할 때나 학생 개인을 지도할 때나 칭찬거리를 찾아 칭찬을 먼저하고 지도하려는 데 처음에는 칭찬거리가 별로 보이지 않고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는데 계속 유념을 하다 보니 긍정적인 면이 자연스레 눈에 뜨이고 칭찬도 진심으로 하게 되었어요.

칭찬을 많이 하게 되는 반은 성적도 더 좋아지고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더욱 원만해져 학교생활이 더욱 즐겁고 보람된 생활이 됐습니다.

드디어 원기94년에 30여년의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명퇴를 하게 됐습니다.

늘 규칙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던 바, 유무념 조목을 조석심고, 기도, 좌선, 염불, 108배, 경전공부, 의두연마로 정하고 4시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심고를 올리기 시작해 차례대로 유무념 조목을 실행해 나갔습니다.

7시까지는 오롯이 저만의 공부시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이 과정이 저의 일과가 됐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원기96년에는 매사에 감사하기로 유무념 조목을 바꾸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 밖에 없었는데 유념을 하고 보니 점점 많아졌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자체로, 밝은 햇빛과 함께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 빗소리, 홀로 피어있는 작은 꽃 하나를 발견했을 때,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 하루 세끼 식사, 기도생활, 어려움 속에서도 잘 자라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들 딸. 따뜻하게 저를 지켜준 저의 남편, 제자로 만나 법동지가 된 딸 같은 성안, 만나면 항상 반가운 법동지들, 전 생애를 바쳐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는 교무님들, 주위 인연들 모두가 은혜며 감사의 대상됐습니다.

감사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스님이 쓴 〈행복도 내 작품입니다〉라는 책 제목처럼 내 작품, 내 행복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유무념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종사님의 말씀처럼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하셨듯이 유념하면 보이고 무념하면 보이지 않는 원리를 터득했어요.

언젠가는 유무념을 뛰어 넘어야겠지만요. 유무념 공부를 계속하면 분명 자신이 변하고 팔자가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보면 어느 생, 어느 날 부처가 될지도 모르죠. 저는 그런 믿음으로 정진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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