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랜 염원이자 목표가 하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희사위에 모시는 일이다. 그 길이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갖게 된 것이다.

원기97년 교당에서 최연소로 법호를 받는 영광을 안았다. 교무님께서 뜸을 들였다가 "우리 집 막내 석희진" 하는 순간, 벌떡 일어나 남편을 끌어안았다. 갈등으로 교당을 몇 번이나 쉰다고 할 때마다 잡아준 남편 덕에 오늘의 내가 있고, 효도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것이다. 내가 만약 정전마음공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글을 기고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교법을 생활에 응용해 보지 않고 대종사가 주세불인 줄 어찌 알 수 있었으며, 경계를 대할 때마다 용심법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줄 어찌 알았겠는가!

저 멀리서 뵙기만 하던 대산종사도 18년 전 정전마음공부 훈련을 나면서 가까이에서 뵙기도 하고 손을 잡고 부축하기도 했다. 장산 황직평종사의 훈련 법문을 통해 대산종사가 어떤 스승이며, 마음공부로 천여래 만보살이 발아하기를 얼마나 염원하셨는지 알게 됐다. 남편을 따라 나선 마음 공부는 나의 일상생활이 됐다. 막내를 임신하고 조산기로 6개월 이상 누워서 정전마음공부 테이프를 얼마나 듣고 들었는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오직 하고 또 할 뿐이었다.

어느 곳에나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 진리의 실상은 음과 양이 항상 함께 있다. 마음 공부도 그 예외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동안 마음 공부로 일어났던 환희와 갈채, 실수, 갈등과 비난을 보고 겪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다른 것은 그렇더라도 마음 공부에서는 맑고 밝고 훈훈한 양의 진리만 있기를 바랐다. 실지로 해(害)에서 은(恩)을 발견하고 해를 은으로 돌리며, 천만 경계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게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이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은 습관 떼기가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마음 공부에도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숙성이 되기까지 그 꼴을 봐주는 것도 천여래 만보살을 키우는 공부인의 심법이다.

특히 교무님들의 심법은 교도와 교당, 교단을 위축시키기도 하고 발전시키기도 한다. 양에 주착하여 음을 수용하지 못하고, 음에 걸려 양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정서가 아쉽기만 하다.

우리 집이 낙원이다. 가려서 안 보였던 낙원이 보인다. 서로의 마음을 보니 닭살부부라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웃는 일도 많다. 아이들과도 용십법을 실생활에서 적극 활용해 보니 삶에 여유가 생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 교법을 사업에 실천하게 되고, 어느 곳에서나 마음 공부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 년에 두 명 이상은 입교시키려 노력하는 것도 원불교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천만 경계는 나를 부처되게 하는 거울임을 알기에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이를 공부 거리, 공부 찬스로 삼을 뿐이다. 그래야 내 마음과 내 가정에 기쁨을 솟아나게 할 수 있으니까. 천만 경계 속에서 일어나는 나를 해결하고 또 해결하여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대자유인이 되기를 염원하고 또 염원한다.

12살부터 시작된 교당 생활은 학생회, 결혼, 남편의 출석, 정전마음공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기도 했다. 이 모두 사은님의 가없는 은혜요, 공부인으로 나아가는 대여정이다.

※다음호 부터는 원무활동의 보람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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