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스승님께 찾아간 자리에 모 교도님이 스승님께 질문을 합니다.

"종법사(대산종사)님이 그러시면 안 되지요. 시자들에게 뭘 시키시며 지팡이를 땅에 두들기며 서두르시는 듯한 모습을 보았는데, 우리들에게는 여유있게, 느긋하게, 편안하게 마음을 쓰라고 하시더니 당신은 왜 그러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무님들도 제 생각에는 그런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 생각이 옳고 교무님들이 틀렸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스승님께서 답을 해 주셨지만 그 분의 요란한 마음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도 역시 요란했습니다.

"정말 종법사님은 그러시면 안 되는것 아닌가? 가만, 그래도 종법사님께 그런 불만을 가지는 건 제자된 도리가 아니니 저 교도님이 신심이 없는 것 아닌가? 또 스승님은 왜 시원한 해답을 못 내려주시지?"

어느날 대종경을 봉독하며 부처님도 팔만사천가지 흉을 본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부처님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지견과 익힌바가 같지 않아 부처님의 참된 뜻을 몰라서 그렇다는 말씀을 받들며, 당시 스승님 말씀의 의미도 이해되고 제 어리석은 중생심도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의 다툼은 근본적으로 내 생각이 옳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이념간의 갈등, 종교 간의 갈등도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을 볼때 불편해지는 내 마음을 바라보면 제 것만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잘 보지 않기에 다툼이 끝이 없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눈이 제 눈을 보지 못하고 거울이 제 자체를 비추지 못하듯이 중생은 아상에 가려 제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의 시비만 보나, 공부인은 자타를 초월하여 자기를 살피므로 자타의 시비를 바르게 아나니라" 고 하십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깊게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으신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중도는 어떤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부처님의 기준은 무엇인가?

답이 있나요? 기준이 있나요?

있다면 그것은 내 생각일 뿐입니다. 나의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아야 중도를 잡을 수 있습니다. 부처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색안경을 벗지 않고는 아무리 잘 보려 해도 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 이 기준을 내려놓는 공부가 정신수양, 바르게 보는 공부가 사리연구, 중도를 잡는 공부가 작업취사입니다.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탄할 시간에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잡았다 놓았다 할 수 있는 힘을 키워봅시다.

<삼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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