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운동화와 돈 2만원

▲ 서광원 교무
내 나이 38세, 중앙총부 총무과장 때 일이다. 당시 나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죽더라도 대산종사를 한번 뵙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에 삼동원으로 대산종사를 뵈러갔다.

대산종사께 인사를 올리자 "잘 왔다. 아무 걱정 말고 내 밑에서 좀 있어라"고 하시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어찌나 황송하고 좋은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에 전해지는 따뜻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대산종사를 혼자 모실 기회가 있어서 그동안 여쭙고 싶었던 내용과 공부과정을 말씀드렸더니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런 현상도 있다"고 하시며 "너의 그런 경험이 앞으로 후진을 지도하는데 좋은 지혜가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대산종사께서 문득 나에게 "교단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내가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것입니다"고 답하자 대산종사께서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재를 기를 수 있겠느냐?"고 다시 되물었다.

내가 다시 "교무들의 대우를 잘 해주면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교학대학 교수진들이 잘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고 말씀드렸다.

대산종사는 "너는 교무들의 봉급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많이 주면 교도들이 너희들을 어떻게 보겠느냐. 교무들의 자랑은 돈을 안 받는 것인데 많이 받으면 성직자도 타락하기 쉽다. 다른 종교 성직자들은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아라. 기관이 확립되면 차차 교무들의 자녀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정토회원들을 취직시켜서 교무들의 뒷바라지를 하게 하려고 한다"고 일러주셨다.

또 대산종사께 법위사정을 너무 후하게 하시어 젊은 사람들이 그 타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리니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종사님을 뵌 분들을 뵙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분들을 내가 사정하지 않으면 누가 사정 하겠느냐. 한 집안의 가문도 조상을 잘 모시듯이 교단에서도 창립유공인을 잘 받들어 드려야 된다. 너희들 때는 엄격히 하더라도 지금은 출가위를 많이 내야 선진들이 빛나고 너희들에게도 좋다"며 "대종사님께서 우리 회상은 천불 만성이 난다고 하셨으니 도인들이 많아 나와야 된다"고 덧붙였다.

내 생에 가장 잊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도 있다. 나는 평소 대산종사 방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대산종사가 방을 비운 틈을 타서 몰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내가 대산종사 법문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어느 사이 오셨는지 대산종사께서 내 뒤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맸다.

대산종사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자비로운 성안으로 바라보시며 "그래 봐라. 봐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얼마 후 대산종사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총부 일이 바쁘다고 하니 가서 총무과장 일을 보라"고 하시며 당시에는 참 귀했던 나이키운동화 한 컬레와 돈 2만원을 직접 주셨다. 나는 그 운동화를 깁고 또 기워가면서 10년을 넘게 신었다.

나를 믿어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이끌어주신 대산종사, 나의 잘못을 눈감아 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살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나도 어려운 동지를 돌봐주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회상에 들어와 가장 행복했던 때, 대산종사의 훈증으로 거듭나 내 건강은 회복되었고, 새 삶을 살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의 예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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