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준 경희대 교수
군비·영토 경쟁, 평화협력으로

2013년 동북아 각국의 정치권력이 대부분 교체되면서 새로운 국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1972년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35개 유럽국가들 간의 다자간 협상을 거쳐 1975년 채택된 헬싱키 최종협약은 유럽안보협력회의 등 이행과정을 통해 동구권의 붕괴에 기여했다.

동구권 시민인권단체들은 이 협약에 포함된 인권조항을 근거로 반정부투쟁을 벌였고, 1990년에는 유럽정상들이 '새로운 유럽을 위한 파리헌장'을 채택함으로써 냉전이 종식되었음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경희대 홍기준 교수는 '동북아 질서의 경로창발성: 헬싱키 프로세스의 시사점'의 논문에서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서울 프로세스가 다자협력을 추동하는 경로창발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그는 "경로창발성(path emergence) 개념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개념의 이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됐다"며 "경로창발성은 그동안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어 온 창발성 개념을 제도의 형성과 변화과정에 접목시킨 이론이다. 특히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제시한 '접혀진 질서(implicate order)'와 '펼쳐진 질서(explicate order)'의 개념을 사회질서에 원용해 사회를 '복잡계(complex systems)'로 간주하고, 사회질서가 접혀진 질서에서 펼쳐진 질서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경로창발성은 형태발생의 장(morphogenetic), 사회적 공명(social resonance), 자기조직 임계성(self-organized criticality), 공진화(co-evolution)의 네 가지 메커니즘이 통시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제도가 사회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초기조건을 비교하며 국제환경, 리더십, 전략목표, 정체성, 군비경쟁 등을 세부적으로 비교 분석해 발표했다.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 출범을 가능하게 했던 국제환경은 70년대 초반에 형성된 동서 간 데탕트였다.

특히 이 시기에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독일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헬싱키 최종협약을 위한 다자간 협상의 개시를 가능하게 한 반면 동북아는 한반도 문제와 영토분쟁, 북핵문제, 역사문제 등이 다자협력에 장애가 되고 있다.

평화협력 구상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 간에 어느 정도의 긴장완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또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양 양 군사 블록 간 협상의 과정이었던 반면 동북아의 세력구조는 이와 상이하다"며 "미국과 중국이 미온적인 상황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6자 회담과 병열구조로 진행될 경우 다자간 협상을 견인할 리더십이 부재하다"고 밝혔다.

동북아 군비경쟁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
긴장완화 통해 경제적 부담 줄려
평화협력 질서 추동


셋째로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는 상이한 이념과 가치체계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협상과정을 거쳐서 인권조항을 의제로 설정했다"며 "이것이 헬싱키 프로세스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반면 동북아는 인권문제 의제를 배제한 채 설정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 인권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인권의제 설정은 매우 민감한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권보다는 각국의 참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의제의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넷째로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가 범유럽 다자안보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출범했지만 각론에서는 상이한 이해관계의 불일치로 협상에 난항을 거듭했다"며 "동북아 경우 한반도 비핵화와 다자간 협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세부적 의제에 있어서 각 국가간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각국의 이익을 만족시킬만한 의제 패키지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언급되지 않은 군사적 신뢰구축(CBMs)을 의제로 설정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는 동서간 군비경쟁이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함에 따라 동서 간 긴장완화를 통해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는 동기도 작용했다"며 "동북아에서도 군비경쟁 완화를 통해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는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비경쟁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유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형태발생의 장' 즉 초기조건이 헬싱키 프로세스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경로로 전개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일단 성공적으로 출범한다면 경로창발성 이론이 제시한 사회적 공명, 자기조직 임계성, 공진화의 메커니즘 작동으로 인해 동북아 질서도 대립과 경쟁의 질서에서 평화 협력의 질서로 전환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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