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 忿 疑 誠 5

믿음에서 출발하여 머무르지 않고 계속 분발해 닦고 나가는 것을 '분'이라 한다면 '분'을 거쳐 가슴에 파고드는 것은 의심일 것이다. 그런 뒤 다시 의심을 철저히 해 나가 하나의 의심이 둥글게 뭉치고, 그 뭉친 의심 덩어리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분발과 의심을 병행해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진행 사조'의 중요한 한 과정이다. 즉 사물을 대할 때마다 대하는 사물에 대하여 깨우침을 얻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충족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이라 한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 겉으로 메마른 태도로 대하지 않고,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촉촉하게 대하면서 분명히 저 속에 반드시 알아야 할 '알음알이'가 있음을 이 가슴 안에 깊이 새겨야 한다.

즉 차분히 사물을 대하며 장차 깨우침의 결과를 얻기 위한 원인으로써 성태(聖胎)를 가슴에 담고, 이를 장양(長養)시켜낼 정성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이처럼 자신이 깨워야 할 성태를 가슴속에 안고 끊임없는 정성을 드리는 일이 곧 '성(誠)'이다.

사람이 아이를 잉태하여 자녀를 낳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어미가 아비를 만나야 되듯이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에는 '신(信)'을 초지일관하여 적어도 아홉 달의 시간을 경과해야 제대로 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을 잃지 않고 '분'과 '의'라는 과정을 거쳐 이를 '성'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이 곧 수행을 진행시켜야 할 네 가지 요건이다. 그러나 이를 줄여 말하면 '신'과 '성' 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 '신성(信誠)' 두 글자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성'이라 하였을 때에 그 뜻은 첫째 '진실된 것'을 뜻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실로 성'이라는 뜻을 가졌고, 둘째 뜻처럼 이루자고 한다면 반드시 마음을 다 하여 일천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성 자체를 '정성 성'이라고 풀었다.

마찬가지로 '신'이라는 말로 내가 입으로 뱉어 내는 말이 아무런 쓸모없는 말이 아니라, 말하는 족족 믿을만한 '말씀'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저 말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톡톡히 쓸모 있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의 말씀은 '금구성언(金口聖言)'이라 쓸모 있는 말씀을 고스란히 믿고 따르는 것을 곧 '신성'을 다 바치는 일이라 한다.

이런 뜻에서 공자가 이른바 "안으로는 충신을 내 마음속에 갊고 밖으로는 행을 두터이 해야 한다(主忠信, 行篤敬)"는 말은 보여주는 바가 크다.

즉 '신(信)'을 깨달음의 종자로 치면, '경(敬)'은 깨달음을 향한 끊임없는 태도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이를 초지일관으로 마음속에 담고 그대로 나아가는 것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꿰뚫어 나감(一以貫之)'라 이른 것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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