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종교적인 매개체로 다가서야 합니다"

▲ 문래동 사)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기자가 만난 사람'은 교단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교단에 대한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려 기획됐다. 첫 번째 시간으로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69)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원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스케치했다.

그는 '도심 텃밭론'이나 '지역사회와 열린 공동체 추구', '가볍고 덜 종교적인 매개체 개발'을 주문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지낸 그는 '현실과 발언' 창립인으로 농촌과 관련된 작품들을 그려왔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국내 작가로는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해 이목을 집중시켰고, 예술의 현실 참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뷰는 김대선 평양교구장과 함께 문래동 '사)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 서울문화재단은 어떤 곳인가

서울시 문화예술단체들을 지원하는 재단이다. 비보이그룹을 포함해 전 장르에 거쳐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지역별로 창작지원센터를 12개 운영하며 예술가들의 창작열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국내 예술가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문학분야는 연희동에 문학창작센터에서, 장애인 창작활동은 송파구, 교육 치료 중심의 활동은 성북구에서, 홍익대 앞은 실험예술 분야를 담당하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또 서울시 시티홀 지하공간을 우리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500~600평정도 되는 전시공간인데 역동적인 공연과 전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농어촌 문화공동체는 무엇인가

1980년대부터 농촌관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주사대 교수로 있으면서 주변을 산책하고, 혼자 답사를 다니면서 농촌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졌다. 임옥상 화백과 여행하면서 농촌에 '빈집'이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됐다. 도시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문화예술로 공동체를 재생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 폐교에 마을이야기학교를 열어 풀뿌리 마을공동체를 4년째 운영하고 있다. 예술을 매개로 한 자치와 자립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포부에서 시작한 운동은 뿌리는 내렸지만 원하는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낮은 이해와 관심, 그리고 참여 부족이 원인이다. 책과 잡지도 발간하고 미술작업, 영화제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마을주민들의 주체적인 문화자립이 아쉽다. 문화적인 권리를 주민들이 찾아나서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2008년 참여정부 인사 표적 물갈이로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자리에서 해임된 뒤 본격적으로 마을운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화실이 있는 가평군에서도 마을공동체 일원으로 주민자치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종교 커뮤니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내 삶이 삐딱한 면이 다분히 많다. 평양에서 이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자들이다. 모친부터 형제들, 조카도 기독교에서 목사나 장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나들목하늘교회 김형국 목사가 내 조카다. 그런데 나는 종교문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틀과 일정한 규범, 질서가 있기 때문에 구속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렇다.

폐쇄적인 종교공동체가 어떻게 지역사회와 함께할지를 좀 더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종교가 큰 공동체주의를 추구할 때 이 사회가 더 아름답지 않겠나. 이것이 인류가 추구하는 공동선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공동체를 지역사회로 넓혀야 하고, 원불교를 신앙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거리낌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개방성을 갖춰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교단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 원불교가 태어난 지 100년을 맞고 있다. 종교·문화적인 상상력을 불어 넣는다면?

예전 동학관련 순례를 할 때 영산성지를 다녀왔다. 뭔가 다른 신령스런 기운을 느꼈다. 산세며 지세며 주변을 보니 참 종교적인 영성이 갊아 있어 보였다. 나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자기 신자들끼리만 소통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선종 교무와 김대선 교무 등과 교류하면서 원불교를 접했는데 다른 종교보다 편안하고 열려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원불교를 너무 모른다. 대중화를 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매개체들이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문화 예술을 통해 다양한 인간사와 결합된 창조물을 만들어 대중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중과의 접촉면이 너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훌륭한 법문으로 대중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가볍고 덜 종교적인 다양한 매개체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개방성이 가미된 콘텐츠를 개발해 외부와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그룹이나 소공동체 중심의 종교 영역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원불교 성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에 신자뿐만 아니라 대도시 일반인들이 참가하도록 하는 콘텐츠 개발도 생각해 봄직하다. 답사팀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량도 중요한 요소다. 동학 유적지 답사가 문화 예술인에게 동학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던 점을 착안한다면 시도해 봄직한 프로젝트다.

- 왜 문래동인가

문래동은 재미난 곳이다. 공단지역이었다가 최근 아파트 개발로 주거지역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단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철공소나 철 자재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둥지를 튼 것이다. 현재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곳의 매력은 싼 임대료와 접근성이 뛰어난 데 있다. 소음 등 작업환경 때문에 1층만 쓰고, 2~3층은 일반 사무실로 임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술촌이 형성되면서 문래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좁다란 골목길은 벽화가 그려지고, 예술가의 작업 공간 뿐 아니라 거리 곳곳이 생기를 찾자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전문해설사가 생겨날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촌장을 맡고 있다.

주목할 점은 커뮤니티가 텃밭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주인의 허락을 받아 옥상에 도심 텃밭을 99㎡정도 조성했다. 도시생활만 하던 사람들이 텃밭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됐다. 상추나 배추, 농작물을 심고, 기르고, 수확하면서 공동체가 결속되고 있다. 상추를 수확할 때는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를 한다. 이밖에도 2주마다 텃밭 워크숍을 열어 지렁이 키우는 방법부터 천연비료 만드는 법 등 텃밭이라는 매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텃밭이 공동체의 핵심인 셈이다. 종교가 생명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도심 텃밭운동은 지금 시작해도 좋은 아이템 같다.

-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인류학을 보면 예술과 종교는 같이 출발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크로마뇽인은 감성적인 생각과 언어를 가졌기 때문에 멸종하지 않았다. 특히 동물의 표피를 옷으로 만들어 입을 수 있는 '바느질'이 가능해 추위를 이기고 생존했다. 그들은 동물 벽화를 그릴 때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낮에 사냥할 때 봤던 들소의 모습을 감성적인 사고로 동굴에 벽화를 그려낸 것이다. 들소는 풍요의 상징이고, 인간은 이런 풍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예술적인 본능이 있다.

나의 영감의 원천은 부족한 곳이다. 농촌, 변두리, 방치된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김씨' 등 많은 작품도 비어있는 가난함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어서다. 왜 시골집은 비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왜 도시로 떠날까하는 고민이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작품들도 농촌의 도구들을 의인화한 낫 아저씨, 호미 아줌마, 괭이선생 등이 포함돼 있다.

-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동학농민혁명100주년이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그 당시 예술가 100명을 조직해 사학자 이이화 선생과 함께 동학 유적지를 답사하고, '동학100주년 기념전'을 준비하느라 작품에 매달렸던 때가 있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이 전성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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