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전생부터 익혀왔던 습관이나 지었던 업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능력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같은 날 입문해 같은 스승아래 지도를 받는 사람이라도 제 각각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종사께서는 공부인의 근기가 서로 차이가 있음을 상중하로 분류하셨다.

근기(根機)는 교법을 받을 수 있는 중생의 품성과 능력의 정도를 말한다. 즉 법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이 법을 바로 알아보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공부하는 상근기, 스승께서 말한 것이 확실한 것인지 믿지 못하고 저울질하는 중근기, 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이대로만 하면 성불한다고 하니 그냥 무조건 믿고 보는 것을 하근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에게 믿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회상이 전만고 후만고 한 회상이 될 수 있을까?

대종사께서는 이 법을 알아보고 이 회상을 찾아오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고 이 공부에 대한 확신이 계셨기에 우리회상에 대한 장구한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은 법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상근기에 있으면 그 근기에서 계속 불퇴전할 심법을 갖추는데 노력을 하고 중근기에 있다면 얼른 그곳을 뛰어 넘으려는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근기에 있으면 그 또한 그곳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중근을 넘어 상근기에 들도록 적공을 해야 한다.

어떠한 근기에 있든지 이법에 대한 서원과 스승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고 오롯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곧 스승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나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스승께서는 제자를 지도하실 때 금생만 보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두고 지도하신다고 하셨다. 최상도 최하도 다 있는 제자 모두를 제도하고자 하셨던 스승의 그 포부와 자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생사를 책임져주시려는 스승과 심심 상련하지 않고 어떻게 영생사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

대종사는 "한생 안 난 폭 잡고 나에게 몽땅 속아 봐라. 영생이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정산종사는 "일생동안 맡기고 살아왔으나 어디 뒷날이 허망하더냐. 이리 저리 안 속으려고 제 재주 부리는 사람은 결국 제 몸 제가 가지고 가더라"고 걱정을 하셨다.

대산종사는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언행에 대해 "대소사간에 의심하여 본 일이 없고 오직 실행하는데 노력하였을 뿐이고 모두를 법으로 알고 받들 뿐이다"고 했다.

대종사를 향한 정산종사와 대산종사, 그리고 앞서 가시는 우리 스승들의 그 신성은 분명 상근기로서 나를 살리고 우리 교단을 살리고 이 회상을 거룩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뒤를 쫒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느 근기의 모습으로 이 회상에서 각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가 반조해 볼 일이다.

<포천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