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란, 가치 존중 및 타인과 공존 위한 것

▲ 박근영 박사는 신촌교당 나영린 교도의 딸이다. 외가가 원불교 집안인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분당제생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일하며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정신건강지원센터 및 법무연수원, 간호사 보수교육 등 다양한 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다음 카페 및 네이버 블로그 '심심타'운영 중.

어떤 일을 할 때면 사람들은 먼저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이런 일을 추진하는 나를 놓고 '남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하는 저울질 하는 마음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눈치'가 없으면 안된다. 병적인 눈치가 아닌 건강한 눈치가 있어야 한다.

최근 〈왜 나는 늘 눈치를 보는 걸까〉 책을 펴낸 박근영 심리학 박사. 그는 "눈치란 직관적이고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능력 중 하나다"고 말했다. 눈치는 언어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에 일어나는 심리적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기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12일 분당 제생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정신건강의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정보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신건강이 중요시되고 있다. 왜 이렇게 치유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나.

이유는 많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는 뭐라도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됐었다. 산업화 중기 단계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중요해졌다. 소위 삶의 질(Quality of life)에 대한 관심이다.

산업화 동안 누적되었던 심리적 회복에 대한 욕구가 반영된 것 같다. 여기에 더해서 고도의 산업화 사회 혹은 정보사회에서는 빠른 변화와 유동성이 개인의 적응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면이 있다.

또한 정신적건강과 신체적건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많아지면서 정신적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했다. 열풍이라기보다는 결여됐던 부분을 급하게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후기 산업사회로 갈수록 서비스업 같은 3차 산업 종사자가 많아졌다. 서비스에는 물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심리적인 부분도 많다. 소위 심리상담이나 심리치유 등은 모두 3차 산업에 속한다. 구조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대 담론이 사라진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가치가 다양화 되면서 '~주의' 혹은 '~ism' 같은 포괄적인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재단하기 어려워졌다. 그보다는 각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생활의 방법을 찾고 있다. 심리학이 이러한 요구에 가장 적절하게 부응할 수 있는 분야이다.

- 심리치유를 진행하면서 눈치에 관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서 눈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담에서 눈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대개 눈치가 보여서 뭘 하기 불편하다거나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또 하나는 눈치 없는 사람하고 같이 지내려니까 힘들다는 것이다. 비단 상담 뿐 아니라 일상이나 방송에서도 눈치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 자체의 속성이나 특징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한 책이 없었다.

눈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기고, 집단과 문화가 개인과 관계 맺는 지점에서 생긴다. 그래서 개인, 대인, 집단, 문화, 사회의 관점 모두에서 눈치의 특성을 생각해 보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 개인에게 부적응을 초래하는지 보았다. 이것을 눈치 증후군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함께 그러한 부적응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썼다.

-사람은 눈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잘못된 눈치와 건강한 눈치가 있는 것 같다.

눈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이중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눈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 눈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건강한 눈치와 건강하지 않은 눈치를 구분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먼저 지나친 스트레스가 되는 눈치는 건강한 눈치가 아니다. 눈치를 봐서 내가 지치고 아프다면 건강하지 않은 눈치이다.

둘째는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해치는 눈치는 건강한 눈치가 아니다. 눈치 보기는 비언어적 특징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나 집단의 암묵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 혹은 압력에 순응해서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치가 없거나 혹은 옳지 않은 것을 위해서 눈치를 보고 행동하고 있다면 이것은 건강하지 않다. 그러므로 건강한 눈치란 심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서보는 눈치다.

- 내 정신건강은 맑은가. 흐린가를 알아차리는 방법은.

[표1〕 정신건강 체크리스트

문  항 질  문 대  답
1   눈치를 봐야 해서 피하는 상황이 있다 아니오
2   눈치를 봐야 해서 피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오
3   눈치를 봐서 피곤하다. 아니오
4   눈치를 보면 소화가 안 되거나 화장실에 자주 간다. 아니오
5   눈치 볼 일이 많아서 식욕이 없다.  아니오
6   눈치를 보면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쑤신다. 아니오
7   눈치를 보다 긴장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오
8  눈치가 보여서 말문이 막히고 생각이 안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오
9   눈치를 보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을 못한다. 아니오
10   남 눈치를 봐서 행동하고 나서 후회한다. 아니오
11   눈치 보기가 답답해서 훌훌 털고 떠나고 싶다.  아니오
12   눈치가 보여서 할말을 못하고 손해를 본다.  아니오
최근 1주일 사이에 해당 사항이 5개 이상이 있다면 눈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표1]에서 제시한 문항에 대해서 최근 일주일 사이에 해당 사항이 5개 이상 있다면 눈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눈치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도 스트레스 반응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상태를 알아보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

눈치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고 정신이 맑지 않다면 우선 눈치 보기를 멈추고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 눈치와 자존감(자신감)의 관계는.

자존감이 높고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눈치를 안보는 사람이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눈치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남의 지지나 결정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 결과 자신의 가치나 주관이 없이 눈치를 많이 본다 .

둘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피드백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소한 말이나 행동도 다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겨서이다. 이 사람들은 아예 눈치를 무시하기도 한다. 잘못된 방어인 셈이다.

- 트라우마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사회에서 트라우마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트라우마 사회란 기본적으로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트라우마라는 말과 달리 정신건강에서 사용하는 트라우마의 의미는 좀 더 제한적이다.

정신건강에서 트라우마란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생명을 잃거나 상해의 위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천재지변, 전쟁, 사고, 폭행, 강간 등이 대표적이다.

-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내 안의 트라우마를 다스리거나 극복하는 방법은.

정신건강이나 이상심리에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보다 제한적인 의미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해당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문제가 만성화 되고 커지기 쉽다. 그러한 트라우마가 아니고 그냥 마음의 상처 정도라면, 문제 상황이나 종류, 혹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다루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것 같다.

- 눈치와 트라우마의 관계는.

천재지변, 전쟁, 살인, 폭행 같은 트라우마는 어떤 경우든 눈치에 악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종류의 트라우마는 정상적인 심리적 과정을 대부분 교란시키고 눈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심리적 생리적 기제도 교란시킨다. 그래서 지나치게 눈치에 민감해 지거나 혹은 지나치게 둔감해 지기도 한다. 혹은 현실을 무시하고 사고 당시의 상황으로 자꾸 되돌아가서 현실을 무시한 왜곡된 눈치를 보게 된다.

눈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기제 중의 하나이다. 눈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사회적으로 생활하려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눈치를 활용해야 한다. 결코 눈치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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